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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 나오는 드라마작가

일드와 미드를 찾아보면서 느꼈던 우리나라 드라마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분야가 다양하다는 점이었다. 가족이야기, 연애이야기, 아니면 시대극. 주인공들의 직업군이나 특정분야에 대한 드라마는 거의 없지. 병원배경의 드라마가 그나마 1년에 한 두 편정도는 만들어졌지만.


문득 ‘우리나라 드라마중에 방송국이 배경인 드라마는 없나?’싶어서 찾아보다가 드라마작가들이 등장하는 드라마를 몇 편 찾았다.



그들이 사는 세상

연출 표민수, 김규태 출연 송혜교, 현빈



‘그들이 사는 세상’의 베테랑 드라마작가 이서우


“개가 개답질 않아, 어떻게..” 거침없는 말투, 일상이나 대본이나 독특한 대사 법을 가진 드라마 작가. 꼼꼼하고, 정확한 대본제출일로 정평이 나 있지만, 잘난 척한단 말도 곧잘 듣는다. 연애도 않고, 거의 일 중독에 빠져 산다. 라고 노희경작가가 설정한 이 캐릭터를, 배우 김여진이 찰지게 연기해주셨던.


두 남녀 주인공의 에피들도 재밌게 봤지만,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을 보면서도 느껴왔듯이, 조연들이 참 진국. 그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해서 드라마 몇 편 더 만들어주셨으면 할 정도로 빠져들어서 봤다.


그 중에서도 이서우작가는 안쓰럽고, 귀여웠던. 엄마병원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자, 뒷바라지 해왔던 남정네가 딴 여자랑 결혼해서 펑펑 울던 모습. 고장난 노트북을 안고 길거리를 울며불며 달리던 모습. 그 후 PD가 현관문 앞에 놓아둔 과일바구니를 질질 끌고 들어가던 모습까지.


 


 


이런 사진이 있길래 당장 저장저장! 작가들이 그러하듯이 배우들도 연기할 캐릭터를 열심히 인터뷰하고 공부한다던데, 드라마 속 이서우작가처럼, 노희경작가님도 그렇게 사랑스러운 캐릭터이실 것같다. 팬이라서 사심가득한 눈길로 봐서 그런가..


 


 


 


드라마의 제왕

연출 홍성창 출연 김명민, 시원, 정려원, 정만식, 오지은


‘드라마의 제왕’에서 신인 드라마작가 이고은


타고난 근성과 집념으로 5년째 스타 작가 정홍주의 보조작가로 묵묵히 일하던 중, 20년동안 독학으로 써재낀 습작의 산물인 ‘경성의 아침’을 드라마화 해주겠다는 앤서니 김의 악마같은 제안에 눈 질끈감고 수락하면서부터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다.


가수출신 연기자들이 한~창 욕먹을 당시에도 려원만큼은 예외였다. 아직도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의 그 펑펑 울던 예쁘장한 모습이 기억나는 걸보면, 처음부터 평타이상을 쳤더랬지. 역시나 이 드라마에서도 연기 잘하기로 정평난 김명민 옆에서도 반짝반짝하더라고.


의도치않게 보조작가에서 짤리고 여차저차하여 앤서니김을 만나서 처음으로 갖게 된 이고은작가의 옥탑방작업실이 나는 참, 탐이 났더랬다.


 


 


 


온 에어

연출 신우철, 진혁 출연 이범수, 김하늘, 송윤아, 박용하


‘온에어’의 스타 드라마작가 서영은


작가. 36세 “드라마란 95%의 상투에 5%의 신선함이면 된다고 봐요 난.” 이제까지 쓴 ‘불륜, 불치병, 신데렐라’ 드라마에 회의를 느낀다. 건강한 드라마 한 번 ‘출산’ 해보자는 일념으로 고군분투하지만 감독 섭외부터 삐걱거린다. 영은은 쉰데렐라 풀 뜯어먹는 소릴 하는 올드한 감독부터 의욕만 앞서 교과서 같은 소리나 늘어놓는 대표작 하나 없는 신인감독까지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든다. 결국 감독 갈아치운 싸가지로 방송가에 파다하게 소문이 퍼지고 영은의 ‘드라마 출산’은 갈수록 난산이다.


내 기억으로는 방송국, 그 안에서도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룬 첫 드라마. 아래의 두 편이 먼저 방송되긴 했지만, 직업보다는 가족사라던가 연애사에 더 초점을 맞춘 작품들인지라. 온에어가 진짜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넓찍~한 작업실은 물론이요 보조작가도 당연히 있고 심심하면 해외나가서 유유자적. 첫 작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높은 시청률을 받아냈으나, 그러나! 뭔가 부족함을 느끼게 되는 시기의 스타작가. 아마 그 부족함은 진정성이었던 듯. 자극적인 소재로 욕하면서도 볼 수밖에 없는 드라마를 쓰다가 자기작품에 회의를 느끼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드라마를 쓰려는 작가로 나온다. 



 


 


불꽃

연출 정을영 출연 이영애, 차인표, 이경영, 조민수


‘불꽃’의 똑부러지는 김지현작가


순수하고 뜨겁고 여리다. 아버지 김교장과의 유대가 특별하다. 종혁의 눈에 들어 일방적인 구애를 받다가 약혼 직전. 종혁 부친 회사 의 부장인 오빠 지태의 압력과 아버지의 권유로 갈등. 객관적으로 종혁은 완벽한 남자지만 그녀가 꿈꾸는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TV로 볼 때는 너무 어릴 때라 잘 몰랐는데 얼마 전 다시 보면서는 ‘아, 이건 진짜 김수현작가의 캐릭터답다’며 이영애가 작가로서 말하는 대사를 곱씹으며 봤다. 감독과 김지현작가가 작품방향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중에 그 자리에 대타로 들어가는 동료에게 내뱉는 쓴 말들, 또랑또랑하게 “난 그런 짓 안해”라고 말하는 당당함. 이전 읽었던 김수현작가의 정체성이 정말이지 오롯이 담겨있는.


그럼에도 이 드라마를 다시 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인표아저씨가 보여주신 분노의 양치질이었던 것이 참으로 웃프다. 분명 중요한 감정씬인데.. 패러디가 워낙 많이 되어서 인표아저씨와 칫솔이 화면에 잡히자마자 웃음이 빵 터지더라고.


 


 


 


인어 아가씨

연출 이주환 출연 장서희, 김성민, 우희진


‘인어아가씨’의 복수하는 드라마작가 은아리영


필명은 은아. 타고난 재능과 피나는 노력으로 28세 방송작가 등단. 그리고 분노의 복수를 시작하는, 어찌보면 열혈 드라마작가이시다.


오랜 시간 무명으로 조연만 거듭하던 장서희의 스타데뷔작. 그리고.. 임성한작가님의 명성이 본격적으로 퍼져나가게 된 드라마. 새삼 다시 느끼지만 임성한작가님은 참.. 용감한 분이신 것같네. 어떤 의미로는 존경스럽기도 하다.


자신과 엄마를 버리고 새 가정을 꾸려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아버지와 그를 빼앗아 가고 엄마를 배신한 여자에게 복수하는 이야기. 드라마작가가 된 은아리영의 작품에 그 배신녀가 배우로 캐스팅되고 덕분에 캐릭터설정으로 온갖 해괴망칙한 모습은 다 시키면서 괴롭히는 에피소드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 복수를 거듭하면서 분노하는 장서희의 연기가, 정말이지 압권.


그러고보니.. 김수현작가님은 ‘불꽃’에서, 노희경작가님은 ‘그사세’에서, 임성한작가님은 ‘인어아가씨’에서 자신의 직업을 가진 캐릭터를 쓴 적이 있으시구나. 괜히 신통방통하네. 게다가 캐릭터들도 모두 알려져있는 작가님들 본인의 모습과 많이 겹치는 것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