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장르가 멜로, 혹은 휴먼드라마 쪽으로 확실히 정해지기 시작할 때부터 벌써 몇 년이나 그런 류의 영화만 쭉 보다보니, 비슷한 영화들이 조금씩 묶이기 시작한다. 뭐, 흔히들 배경음악이 멋진 영화라던가, 프로포즈 장면이 멋진 영화라던가 하면 몇 편씩 떠오르곤 하는것처럼 말이지.
그렇게 묶어지는 주제중 하나가 바로 옆 집의 남녀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 식상하게도 기본구조와 이런저런 이야기 속의 장치들이 똑같은 구조로 만들어졌지만, 신기하게도 느낌이 전~혀 다르다. 캐릭터랑 배경에 따라서 같은 구조라도 다르게 보이는게 당연하긴하지. 어쨌든 같으면서도 다르게 펼쳐지는 옆집남녀의 사랑이야기 중 내가 기억하는 세 편을 꼽아보자면~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
Turn Left, Turn Right
일본영화는 최근 몇 년사이에 매니아 층도 생기고 비교적 많이들 보기 시작했지만, 대만이나 홍콩쪽 영화는 아직 생소한 듯. 그런데 가끔 우연히 본 대만영화중에 내 맘에 쏙 드는, 스토리도, 배우들도, 배경화면도 괜찮다싶은 영화들이 몇 편있는데, 이 영화가 그 시작이었다.
아마도 처음 본 대만영화? 금성무가 남자주인공으로 나오는데, 이 사람이 옛날에 4대천왕이었던가 아니었던가. 가물가물하네. 여자배우도.. 이름을 잊었지만 꽤 인지도가 있다고 한다. 나야 왕가위영화에 나오는 배우들 외에는 중국배우에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만,ㅎ
제목 그대로 여자는 대문을 나서면 왼쪽으로만 가고, 남자는 오른쪽으로만 가기때문에 집 앞에서는 서로 마주칠 일이 없지만, 이 두명의 선남선녀는 영화의 첫장면에서부터 지나친다. 그렇게 몇 번을 지나치다가 서로 이웃인 걸 모르는 채 다른 장소에서 만나 결국은 사랑하게 된다~는 식의 이야기. 정말 뻔하지만, 정말 유치하지만, 워낙 아무런 기대없이봐서인지 괜찮다싶더라.
다만, 엔딩이 정말이지 황당하고 워낙 중국쪽 영화들이 그렇듯이 조연들이 엄청 조잘거리며 아주 약간의 판타지적인 장면들이 정신사납게 만들긴한다. 그래도 역시나, 금성무는 멋있다는것!
이 포스팅에 나오는 세 편의 영화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장면이 바로 요런 장면이다. '얘들 옆 집 살아요~'하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감독님들. 분명 자기들도 식상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왠지 빠트리면 허전한걸까?
오토나리~사랑의 전주곡
おと・な・り
일본영화는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확실히 갈라지던데.. 나는 초강력! 일본영화매니아다. 형사물이나 미스테리쪽도 보긴하지만, 멜로나 가족이야기, 휴먼드라마 장르는 정말이지 일본영화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심심하다는 사람들도 이해는 되는데, 그만큼 섬세하고 잔잔하달까. 분명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와 거의 같은 구조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도 참 다르다. 대만영화가 명랑만화라면 이 영화는 서정시? 순정만화도 아니고, 진짜 서정시.
잘나가는 카메라맨과 프랑스 유학준비중인 꽃집 아가씨. 크~ 이 얼마나 유치하지만 멋진 설정인가. 하지만 멋져보이는 그들에게도 당연히 고민은 있고, 영화의 초반부는 그들 각각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고민들이 해결되는 과정과 이 두사람이 만나게되는 과정이 겹치는게 요런 영화들의 또 하나의 공통점이다. 정말 완벽하게 행복한 사람은 없는걸까하고 또 한 번 생각하게 된다는.
아무리 영화와 현실을 구분못하는 나라도 "에~이 말도안돼!"라는 순간이 가끔 있는데, 이 영화보면서 그랬다. 두 사람이 사는 건물의 벽이 얇아서 옆 집 소리가 정말 적나라하게 들리는데, 얘들은 그걸 즐기는 것처럼 나온단말이지. 이렇게 벽에 대고 미안하다고 인사까지하고.
내가 방음 정말 안되는 집에 몇 달간 살아본 결과, 요건 말이 안된다. 옆 집 소리가 들리는 것도 싫지만, 어떤때는 내가 마우스 클릭하는 소리까지 들릴까봐 노심초사하게 되던걸. 이 여자분께서는 방음 안되는 걸 뻔히 알면서 그 쪽벽에 앉아서 회화공부까지하고. 나는 조금이라도 소리막아보려고 옆집쪽 벽에 장농으로 다 막아놨는데! 역시 영화는 영화인뿐인걸까?
내 깡패 같은 애인
My Dear Desperado
장동건보다, 원빈보다, 강동원보다, 그 누구보다 박중훈이 훨씬 멋있다!고 한동안 생각하게 했던 영화. '내 깡패같은 애인' 영화를 본 여인네라면 이해하리라. 늙고 허약하고 별까지 달아버린 한물간 깡패. 허름한 반지하에 살면서 나이트 전단지를 붙이는 깡패. 정말 최악의 캐릭터로 설정해놓고는 최고의 모습들만 잔뜩 보여준다.
여기있는 영화 세 편중에 이 영화가 가장 리얼하지 않을까싶다. 대만영화는 판타지명랑만화, 일본영화는 잔잔한 서정시, 한국영화는 리얼다큐? 어쩌다보니 나라별로 묶어져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렇더라고. 박중훈 캐릭터야.. 내가 그 세계를 알 리가 없으니 그렇다치고, 여자분 캐릭터가.. 심히 와닿는거다. '저 장면은 내 얘기고, 저 장면은 내 친구얘기고, 또 저 장면은 아는 언니얘기고..' 씁쓸하지만 대한민국의 20대가 그렇지뭐. 면접장소에서 저렇게 춤췄다는 친구도 실제로 있었다. 그 친구는 남자였지만.
옆 집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영화들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공통점. 옆 집에 살면서도 꼭~! 집 앞이 아니라 다른 장소에서 우연히 만나 feel을 주고받는다. '왼쪽으로가는여자 오른쪽으로가는남자'에서는 분수대있는 공원, '오토나리'에서는.. 직접 만나지는 않지만 커피숍 한 곳이 등장하고, 이 영화에서는 동네분식집. 다시한번 이 영화가 리얼했음을 느끼게되네. 동네분식집이라...
'내 깡패같은 애인'에서 박중훈이 보여주는 첫번째 멋진 - 조금은, 아니 많이 웃기기도 한 - 장면도 이 곳에서 볼 수 있지.
이 영화, 극장에 올라오기가 무섭게 내려갔었던걸로 기억한다. 당시에 뭐더라.. 기억나지않는 흥행작이 하나 있어서 정말 조용히 사라졌던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정말 아쉽다. '시라노 연애조작단'보다 이 영화가 훨씬 웃기고 감동적인데. 세 편의 영화중 가장 처량하고, 가장 리얼하고, 가장 멋있었던 이야기는 '내 깡패같은 애인'이었던 것같다. 멋진 캐릭터도 아니고, 멋진 배경도 아니었지만 가장 훈훈하고 찡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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