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와 ‘화양연화’를 다시 떠올려봤더니 배용준과 손예진의 ‘외출’은 이 영화와 참 닮았다. 아내가 바람난 남편, 남편이 바람난 아내, 그리고 남겨진 두 사람의 불륜.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도쿄타워’와도 닮았다. 외도의 당사자가 아닌,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절절하게 보여주는 면에서. 한마디로, 배우자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게 된 이들의 이야기부터 그들과 관계된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정말이지 구구절절한 스토리를 너무나도 심플하고 와닿게 만든 영화.
사실 처음 ‘화양연화’를 봤을 때는 스토리는 안중에도 없었다. 왕가위감독 특유의 그 화면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 시대를 보여주는 인테리어며 의상이며 사소한 장치 하나하나가 정말 좋아서. 그의 작품중에서 ‘중경삼림’을 가장 좋아하지만, 분위기만큼은 ‘화양연화’가 가장 로맨틱하고 애잔하다. 그래서 좋다.
언제나 아슬아슬한 두 사람의 거리. 닿을 듯, 닿지 않을 듯. 만나도 될 듯, 만나서는 안될 듯. 관객을 가지고 노는 왕가위는 끝까지 보는 이와 밀당을 한다.
두 사람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요소를 만들어 보여주다가도
두 사람이 가까워져서는 안되는 이유를 재차 보여주면서. 서로의 배우자가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부터 이 순서는 반복된다.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가.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그 순간이 관계가 끝나는 순간. 왕가위는 진정, 밀당의 고수다.
몇 년후, 더이상 그 집에는 서로가 없다는 걸 알았을 때. 두 사람이 느꼈을 실망감, 안도, 그리고 그리움을 눈빛 하나로 보여주는 걸 보고 괜시리 내 가슴이 아팠다. 무조건 해피엔딩을 외치는 관객 중 한 명이지만 슬픈 결말의 영화가 더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 밖에 없네.
국수사러 온 아줌마와 만두먹는 아저씨를 이렇게 섹시하게 연기할 수 있는 배우들, 그들을 보여주며 관객을 유혹하는 감독. 이 영화를 보면서 끊임없이 감탄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왕가위감독의 모든 영화에서처럼, 정말이지 매치 잘 시키는 그 배경음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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