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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면 생각나는 영화

몇 일간을 '날 얼려죽일 작정이로구나'싶을만큼 춥더니, 오늘 그 추위가 절정에 달했다. 제발 남은 겨울은 이렇지 않기를. 어떻게든 3월까지 버텨내야 할텐데. 무더위보다는 혹한이 낫다는 사람들이 많다지만 여름태생이라 그런지, 아니면 전생에 개구리나 곰이었는지 몇 십년을 살아왔는데도 겨울은 해마다 힘겹다.

 

봄날이 오는 그 날까지는 여행도, 밤마실도, 동네산책도 다니기 힘들어질테니 따땃한 유자차 끓여서 이불뒤집어 쓰고 귤까먹으면서 겨울영화나 보자. 그토록 싫어하는 겨울이지만, 영화 속의 겨울은 참, 예쁘고 좋은 배경을 만들어준단말이지.

 



러브스토리

 

식상하지만 어쩌리, 생각나버리는걸. 저 염장샷과 동시에 우우우우우~우우~우~우~하는 그 배경음악까지 생생히 동시재생되는걸. 어릴 때 이 영화보면서 저 연인이 눈밭에서 연애질하는게 너무 예뻐보여서 언젠가 꼭 나도 저렇게 해보리라 꿈꿨었는데.. 아무리 좋아죽겠는 남친이 생겨도 차마 저 짓은 못하겠더라. 내 사랑이.. 저들보다 덜 달달했던걸까나.

 

 

 

 

 


비몽

 

좋아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듯한 영화. 나는 몇 번이고 되돌려 본 영화. 주로 실내씬이 많아서 딱히 계절이 도드라지는 건 아니었음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왠지 싸늘한 느낌이었던. 특히나 마지막장면때문에 더 그랬을 수도 있겠다. 저 나비가 오다죠의 손으로 옮겨가는 딱 그 장면에서 끝났으면 난 더 좋았을 것같은데. 하긴, 그래도 얼굴은 안 보여줬으니까.. 

 

 




로맨틱 홀리데이

 

저기가 어디랬더라? 분명 영국의 어딘가 시골동네였는데 지명은 모르겠네. 크리스마스시즌을 공략해서 나왔던 영화답게, 배경에는 여기도 눈, 저기도 눈. 내용은 그저 달콤달콤.

 

카메론 디아즈가 저 낯선 시골집에서 벌벌 떨면서 오두방정떠는 모습이 너무나도 내 모습같아서 더 기억에 남는다. 물론 이후에 펼쳐지는 주드 로와의 러브스토리를 보며 또 다시 이질감을 느꼈지만.

 

 

 

 

 



세렌디피티

 

로맨틱코미디는 대부분 내용이 비슷비슷해서인지 시간이 지나면 디테일은 잊는다. 어차피 줄거리는 똑같으니까. 그나마 한 두장면이라도 기억이 난다면 그 영화를 꽤 재밌게 봤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영화가 그렇다. 제목을 보아하니 운명적인 만남 어쩌고 인듯한데 줄거리는 전혀 기억이 안난다. 

 

그저 딱 저 장면, 눈오는 스케이트장에 두 사람이 부둥켜 안고는 러브광선 마구 발사해대는 모습만, 그 장면을 보면서 괜시리 뺨이 발그스레했던 내 모습만 기억이 나네. 

 

가는 세월을 또 이렇게 느껴야하나. 이게 벌써 10년전 영화. 

하아.. 점점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이 '고전'이라는 수식어를 달아간다. 분명 최신개봉작이었거늘.

 

 

 



올드보이

 

어찌 잊으리. 저 새하얀 눈밭을, 핏빛으로 감싼 미도를, 그리고, 저 때의 오대수를.

원작만화에서도 저 화면 그대로였는지 궁금한데, 누가 되었든 이 영화의 엔딩을 셋팅한 사람은 참 대단하고도 참 잔인한 사람이다. 이 영화 자체도 그렇지만.

 

대단한 영화라는데는 동감하지만, 다시 보고싶지는 않은 영화. 저 마지막 장면이 꽤나 오랫동안, 문득 문득 떠올랐었다. 






우리집에 왜 왔니?

 

강혜정은 확실히 평범한 여배우는 아닌듯. 필모가 하나같이 독특한 캐릭터로 빼곡하다. 또래의 다른 여배우들과 비교할래야 할 수 없는 개성. 그게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난 좋아한다. 그리고 특히나 이 영화에서의 강혜정은 유난히 좋았다. 역시 영화는 아무 기대없이 사전정보 전혀 없이 봐야하는 걸지도.

 

거의 90프로 정도가 남자의 집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인데, 처음엔 노숙자깡패여주인공이 이런저런 누더기들로 몸을 꽁꽁 싸매고 있다. 그러다 두 주인공이 교감을 하기 시작하고, 동시에 여주인공은 그 누더기같던 옷들을, 누더기같던 상처를 하나씩 덜어내는. 애잔하달까 먹먹하달까 그런 영화.

 

카메오랄까 단역이랄까로 등장하는 승리를 파묻어버리려고 땅파는 장면에서 비가 왔는데.. 그럼 겨울이 아니었나? 모르겠지만, 아무튼 마음을 얼렸다가 녹였다가 얼렸다가 하는 묘한 영화.

 

 





철도원

 

몇 몇 영화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설경, 그것도 새하얀 눈밭이 인상적이었나보다. 한창 일본영화에 미칠까말까하던 시기에 정말 우연히 이걸 봐버렸고, 결국은 일본영화에 빠져버렸더랬지. 

 

지금 다시 본다면 어떨런지. 벌써 십여 년전에 딱 한 번보고 안봤으니 내 마음에 때도 많이 묻었을테고, 그러니 너무 뻔하다고 느끼며 감동 못받을지도 모르겠다. 혹시나 그렇더라도 주인공 할아버지가 눈내리치는 저 플랫폼에서 깃발을 올리는?내리는? 그 장면에서 또다시 왈칵 울어버릴게 분명하다. 









킬빌

 

'저수지의 개들'과 '펄프픽션'은 좋아하지만, 이런 내용인 줄 알았다면 나는 이 영화를 보지 않았을꺼다. 미쟝센이 어쩌고 저쩌고하며 아무리 호평을 쏟아부어도 난 안봤을텐데. 역시나 액션영화는 확실히 내 취향이 아니란 걸 확신하게 만들어준 영화. 그럼에도 챵챵소리내며 루시리우가 칼질하던 저 눈밭은 또렷하게 기억에 남네. 

 

지금에서야 문득 생각하는건데.. 어차피 배우라는 직업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연기하는 직업이니, 다른나라사람을 연기한다고해도 이상할 이유는 없다. 유럽배우들은 영국사람이 아일랜드인을, 프랑스인이 독일인을 연기하는 경우가 널렸으니까. 그에반해 아시아권, 특히나 우리나라배우들이 일본인을 연기하는 걸 꺼리고 관객들이 꺼리는건 아마도 역사때문인듯. 왜 난 지금껏 이걸 깨닫지 못했나.

 

왜 킬빌에서 기모노입은 루시리우를 보며 '저러고 싶을까'하며 혀를 찼었나. 정작 나는 일본영화며 드라마 주구장창 보면서 말이지. 살짝 미안함.





풍산개

 

여기저기서 모두 칭찬만 쏟아내기에 봤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에 '그래봤자 윤계상이지 뭐'했었다. 영화가 시작되고, 그저 멍하니 봤다. 영화가 끝나고, '허, 미친, 대박..'을 연신했다. 하나하나 말하자면 끝이 없을만큼 다 놀라웠지만 - 워낙 이 배우에 대한 기대치가 낮기도 했고 - 특히나 딱 봐도 엄~청 추워보이는 그 날에 실오라기 하나 안걸치고 그 차디찬 강물에 두 번이나! 무려 두 번이나!! 들어갈 때마다 보는 내가 다 동상걸릴 것같더라는. 강물에 들어갈 때의 표정도, 나와서 업무를 마치고 저 풍산개담배를 필 때의 표정. 아직까지도 놀랍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살떨리게 춥다. 으으.





 

 


혜화,동

 

혜화 뒤에 붙은 동은 겨울 冬이 아닐까? 아닌가? 영화의 배경도, 주인공의 마음도, 그리고 내용까지. 싸늘한 겨울바람같고 얼어붙은 빙판같았는데. 

 

워낙 영화든 소설이든 드라마든 만화든 뭐든간에 현실과는 조금 다르길 기대하며, 조금 더 달콤하고 따뜻하고 훈훈하길 바라며 보는 사람인지라 이 영화보면서 있는대로 미간을 찌푸렸었다. 나까지 씁쓸하고 암담해졌었다. 마지막에가서야 겨우 '아, 보길 잘했다'하긴 했지만. 혜화에게도,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네. 아아, 아무튼 빨리 춘삼월이 왔으면.

 


'러브스토리'만큼이나 식상하지만, 그래도 '겨울'하면 생각나는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이 장면으로 마무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