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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눈물이 인상적인 영화

"여자는, 잘 운다. 나는, 여자다. 그래서 나는, 잘 운다."

 

 이런게 아마도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이론이야 어찌되었든 실제로 난 잘 운다. 나에게 어떠한 일이 생겼을 때가 아니라 화면 속에서 살아가는 저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다가 곧 잘 울곤한다. 친구들이 나와 극장에 가길 꺼려할 정도라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리라.

 

관객의 코 끝이 찡해질무렵에 영화의 주인공들까지 눈물을 뚝뚝 흘려버리면 또 덩달아 눈물이 주륵주륵하고 쉴새없이 흐른다. 특히나 하늘하늘 가녀린 여인네가 아닌, 평생에 딱 세 번만 울어야 할 남정네들이 흐느끼며 울어버리면, 나처럼 팔랑거리는 감성을 가진 관객들은 그 남정네들의 눈물이 만들어내는 감정에 푹, 담금질을 당하게 된다. 아주아주 푸욱.

 




황정민, 전도연의 너는 내 운명


최루성영화의 역사에 길이 남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가 더 사무쳤던, '너는 내 운명'. 이 영화에서 두 배우들은 얼마나 울었던가. 그리고 관객석에 앉은 우리들은 또 얼마나 울었던가. 이런저런 영화를 볼 때마다 '이 캐릭터를 다른 배우가 맡았더라면 어땠을까?'하는 걸 상상하곤 하는데 다른 영화는 몰라도 '너는 내 운명' 만큼은 그 어떤 배우를 상상해봐도 황정민말고는 당최 어울리지가 않았다. 그만큼 본래 이미지도 어울렸고, 연기같지 않은 연기를 보여줬었지. 바보같이 착한 남자의, 바보같이 사랑했던 남자의,바보같아서 더 슬프고 아팠던 눈물.

 

 



 


카가와 테루유키, 오다기리 죠의 유레루


눈빛으로 연기하는 배우 오다기리죠와 온몸의 氣로 연기하는 배우 카가와 테루유키. 소름돋을만큼 두 인물의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왔던 '유레루'에서 오다기리 죠는 자책과 후회의 눈물을 흘린다. 감독은 이 장면을 아주 천천히, 오랫동안 보여주는데, 어두운 배경속에서 눈물로 반짝이는 인물의 감정을 최고로 잘 보여준 편집이 아니었나싶다. 그리고 자신의 오해와 착각을 뼈저리게 후회하면서 슬퍼하는 주인공을 보고있자니, 비슷한 나의 경험도 떠올랐었다.

 

초등학교 5학년때쯤 이었던것같은데, 그 때 잠깐 할머니와 함께 살았었더랬다. 어느 날 할머니의 머리끈을 봤는데 그 머리끈이 내가 가진 것과 똑같았다. 그도 그럴것이 가장 흔한 까만색깔의 고무줄, 길거리에 널린 그 오백원짜리 머리끈이었으니까. 그런데 그걸보고는 왜 내 껄 할머니가 가지고 있느냐며 엄청 짜증내고 화내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아니라며 설명하시던 할머니도 그 어린 손녀가 바득바득 우겨대니 잠자코 그래 미안하다며 아무 말없이 앉아계셨는데.. 그리고 몇 일 후 할머니는 시골로 돌아가셨고, 내 서랍 속에는 두 개의 똑같이 생긴 머리끈이 들어가 있었다. 말할 수 없이 부끄럽고, 죄송하고, 죽을만큼 나 자신이 싫어졌던 기억.

 

조금 다르긴하지만, 내 머릿속의 어떤 장치가 고장나서 만들어내는 오해와 미운감정, 그런 것들을 마구 끄집어내서 슬프게 만들어버렸던, '유레루'의 못난 남동생이 흘렸던 눈물.

 




 


강동원, 이나영의 우리들의 행복한시간


'얼굴만 잘생긴 배우'였던 강동원에게 '얼굴도 잘생긴 배우'라는 평가를 받게해 준 '우행시'. 정말이지 이 영화를 보면서 몇 번이나 공지영을 탓했는지 모른다. 작가의 진중한 의도따위는 관계없이 "왜 강동원이 죽어야돼!!"라는 단순한 팬心으로. 이제 몇 살 더 먹고나서 이 영화의 사형수를 바라보면, 단순한 동정보다는 죄책감이 든다. 아무것도 해 줄 수없는 내가, 그들에게 미안해진다. 지금은 사형제도가 폐지되었는지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사람이 사람에게서 목숨을 빼앗는다는 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입장인지라. 그러면서도 앞장서서 사형제도따위 개나 주라며 열심히 목청높여 소리치지도 못하는 소시민인지라,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더욱이, 이 이야기 속에서처럼, 사실은 억울한 누군가라면. 더더욱 죄스러워진다. 한 편의 소설이, 한 편의 영화가 수많은 사형수들의 현실을 돌이켜보게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게 아닐까. 영화 속 강동원의 눈물은 분명 꽃미남 배우의 눈물이 아니라, 국가와 법이라는 것에 의해 생명을 잃어야하는 사형수의 절망, 그 자체였다.

 

 


 


강동원,조한선,이청아의 늑대의 유혹


'우행시'가 떠오르니 자연스레 생각난 '늑대의 유혹'. 작가를 비롯한 많은 영화관계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영화, 강동원의 미소와 강동원의 눈물 외에는 기억나는게 전~혀 없다. 한 명의 배우가, 그것도 당시에는 연기력도 참으로 낯부끄러웠던 배우가, 영화 한 편을 이렇게 유명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구나싶었던.

 

다른 영화에서 남자의 눈물이 이야기를 더 실감나게 만들어주고 더 진한 감동을 안겨줬다면, '늑대의 유혹'에서 남자주인공의 눈물은 그 영상만으로 영화의 스토리와 전개와 다른 인물들과의 개연성 등등 모든 요소를 덮어버렸었지. 스토리가 형편없었던 탓인지, 강동원의 비주얼이 그만큼 치명적이었던 탓인지는 굳이 밝힐 필요가 없으리라.

 

 




최민식, 유지태의 올드보이


이 두 남자의 슬픔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그저 눈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단순히 슬픔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모자라다.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처절해서 절규하는 두 사람. 배우에게도 잔인하고 관객에게도 잔인했던 스토리. 최민식의 아픔은 그 아픔대로, 유지태의 아픔도 그 아픔대로, 서로 원수인 두 남자의 이야기가 이것도 저것도 끔찍할만큼 슬퍼서 그냥 울어버리기도 민망했을만큼 아팠다.

 

그래, 슬프다기보다는 아팠다. 짜증나게, 화나게, 절로 미간에 주름이 잡히고 가슴이 답답해질정도로 잔인하게 슬펐던 두 남자의 피눈물. 영화'올드보이'에서 흘렸던 두 남자의 피눈물은, 내게 절규라는 명사를 아주 확실히 가르쳐주었다.

 

 



 



최민식, 장백지의 파이란


새삼 최민식이라는 배우의 위대함을 느낀다. 출연작 한 편 한 편 어느 것하나 그냥 지나칠만한 작품이 없다. 특히 이 영화 '파이란'은 남자도 울어버리는 영화로 정평이 났다. 그런 불순한 목적으로 결혼했던, 아니 혼인신고만 했던 그 여자의 죽음에, 왜 남자는 그토록 슬퍼했을까. 이 영화를 아무리 감동적으로 본 사람이라도 그 이유를 한 마디로 설명하지는 못할꺼다. 그저 최민식이라는 大배우가 연기하는 그 이야기에 빠져있었을 뿐이니까. 이성적인 판단따위는 모두 묻어버리는 위대한 배우가 보여준, 절대 잊을 수없는 남자의 눈물 그 자체.

 

 


 

리암 니슨, 벤 킹슬리의 쉰들러리스트


이 영화를 보고나서 쉴새없이 유대인관련 영화들을 찾아봤었다. 그랬더니, 참 신기하게도 2차세계대전과 관련된, 유태인의 아픔에 관한 영화들 중에는 그저 그런 영화나 형편없는 영화가 없더라. 분명 같은 역사적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모두 다른 관점에서 다른 시각으로 풀어낸 훌륭한 영화들. '인생은 아름다워'나 '글루미선데이', '타인의 삶' 등등 넘쳐나는 명작 중 그래도 단연, '쉰들러리스트'를 최고로 뽑고 싶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아이작 - 이 이름이 맞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난다 - 과 쉰들러가 마지막에 나누는 짧은 대화와 술 한 잔. 두 사람은 그 때 얼마나 답답하고 가슴이 쓰렸을까. 우리도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유대인들의 그 길고 험난한 시간들은 아직도 어딘가에서 진행중인것만 같아 더 슬프다. 아이작의 저 눈물은, 남자의 눈물이 아닌 유대인들의 눈물이었겠지.

 



 

 


이케와키 치즈루, 츠마부키 사토시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 영화를 마지막에 둔 이유는, 남자의 눈물이 인상적이었던 영화,라고 했을 때 가장 처음 떠오른 장면이 저 장면이라서. 영화도, 영화속 캐릭터들도, 그 캐릭터를 연기했던 배우들도, 영화의 배경이 된 그 초라한 집도, 귀여운 변태아저씨까지도, 모두모두 좋아하다못해 사랑한다 할 정도로 애착가는 영화.

 

그토록 애착이 생긴건 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조제와 쿨한 헤어짐을 하고 돌아선 남자의 어린애같은, 그래서 더 현실적이었던 눈물이 자꾸만 생각이 나서. 도무지 잊혀지질 않아서. 예쁘고 인상적인 장면들도 참 많았던 '조제,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지만 조제와 헤어진 남자의 저 우는 장면과 마지막 대사는 두시간남짓의 영화 한 편을 압축해놓은 것만같다. 여자인 나는, 저 장면을 보면서 그 대사를 들으면서 조제가 진심으로 부러웠다. 남자인 내 친구는 딱 한마디를 했다."나쁜놈!"이라고. 과연 그 친구가 조제같은 여자를 만났을 때 영화와 다른 전개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여자는 잘 운다. 나는 여자다. 그래서 나는 잘 운다. 반대로, 남자는 울면 안된다. 저들은 남자다. 그럼에도 저들은 울어도 된다. 왜냐하면, 배우니까. 스크린 속에서 이야기를 펼쳐가며 인물의 감정을 우리가 잘 느끼도록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 그러나, 현실의 남성들이여. 여자앞에서 울지말자. 픽션이라는걸 뻔히 알고도 여인네들은 남정네들의 눈물에 이리도 가슴이 찢어지거늘, 실제 내 남자가 울어버리면 그 눈물을 어찌 감당하리. 옛말에 틀린 말은 없다 하였으니 살면서 딱 세 번만 울어주길 바란다. 그리고 그 모습을 애써 숨기는 예쁜짓까지 해준다면, 참으로 감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