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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말고, 마스터.

워낙 술이 약하긴하지만, 그래도 난 혼자 술마시는 걸 즐긴다. 잠이 안와 뒤척이다 냉장고에 잠들어있던 맥주를 홀짝이기도 하고, 추적추적 비라도 오는 날이면 제일 예쁜 와인잔에 아껴놨던 와인도 마셔보고.

 

청승맞다고? 솔로의 밤이란, 원래 그런거지뭐. 초저녁에는 멀쩡하다가 누군가 불러내기엔 너무 늦은시간이 되어서야 스리슬쩍 술생각이 나는걸 어째. 이제는 그 혼자마시는 술이 익숙해지긴했지만, 그래도 가끔은 누군가 앞에 앉혀놓고 마시고싶다.

 

친구나 애인말고. 누군가 나의 일상과 전혀 관계없는, 그저 내 이야기를 잠자코 들어줄 사람, 어디 없을까? 영화에는 있던데. 아주 매력적인, BAR의 안주인들이.



시라노연애조작단의 화끈한 왕언니

 

이런언니, 어디 없을까? 얼핏보면 우아한 와인바사장님이지만 아끼는 동생을 위해서라면 과감히 와인병을 박살내줄 수 있는 그런언니. 진정으로 갈구한다! 왜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쇼핑몰아니면 호프집이냐고..

 

이 영화 한 편으로 이민정이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었지만, 정작 나는 요요 화끈한 와인바의 언니에게 트로피를 안겨드리고 싶었더랬다. 한동안 진지하게 bar개업에 드는 비용을 계산해 볼 정도로.

 







 

날책임져 알피라는 황홀한 영화를 비극으로 만들어버린 그녀

 

보기만해도 엔돌핀이 샘솟는 날책임져 알피에서의 주드 로. 카흐~ 멋져. 여자들이 좋아할만한 모든걸 갖추고 등장했던 주드 로를 보면서 달콤한 기분에 흠뻑 빠져있었거늘. 이 영화도 관객의 뒷통수를 치는 영화다. 분명 가벼운 로맨틱코메디의 포장을 하고있지만 엔딩으로 가면 갈수록 찜찜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스토리. 감독은 진정한 사랑이라는 걸 그런 식으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었던건지. 기분좋게 보기 시작했다가 입 꾹다물고 "움.."하며 극장을 나왔던 날책임져 알피였지.

 

내가 이토록 불만을 잔뜩 늘어놓도록 만든 장본인이 바로 저 여인, 알피에게 하나뿐인 친구의 애인이자 BAR의 여사장. 아, 직원이었던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정체모를 bar에서 내남자의 친구를 유혹해버리고 만다. 지나친 매력은 이런식으로 화를 불러오기도 하지. 그리고 그 하룻밤이 결국 모든걸 틀어놓는, 그 후에 알피는 반성하고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되새긴다는 뭐 그런 내용. 주인공인 남정네를 유혹하는 BAR의 안주인은 다른 영화에도 등장한다.

 

 





 


 

도를 넘은 섹시함, 청춘의 여사장님

 

학교에서는 저리도 지적인 옆모습을 보여주며 학문에 열중하는 그녀이지만, 돌변하니 정말 무섭더군. 목적은 제각각이지만 이 영화는 생각보다 다양한 층의 관객이 봤을것이라 짐작한다. 특히 사춘기의 방황하는 소년들! 뭐 이유야 뻔하지만, 심히 걱정되는건 십대의 어린 영혼들이 그 단순한 목적으로 이 영화를 봤다가 저 여자분의 캐릭터, bar를 운영하는 선배의 캐릭터를 일반화시켜버리면 어쩌나해서. 섹시하다못해 섬뜩할만큼 무서웠던 청춘의 여사장.

 

 

 




 


이상적인 bar 여주인의 정석, 인간실격의 그녀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BAR 안주인의 전형은 바로 이 분. 할머님이라 불러야 할것같은 연세의 그녀지만, 아가씨들은 흉내도 내지못할 기품과 매력이 철철 넘친다. 연륜도 보통 연륜이 아닌, 오랜시간동안 세상에 취하고 술에 취한 젊은이들을 상대하며 키워왔을 연륜으로 가득찬 멋진 여인네.

 

평소에는 우아하게 바 안쪽에 앉아 조용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지만, 가끔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어쩜 그리 개운하고 멋지던지. 이런 여사장이 따라주는 술이라면 아무리 술이 약한 나라도 보드카 몇 병쯤은 스트레이트로 마셔버릴 것만같다. 다음날 영수증보고 좀 놀라긴하겠지만, 그럼에도 자꾸만 가고 싶어지는 bar가 되지않을까.

 

 




 

 


 달팽이식당의 주인공엄마

 

산골 어딘가에 하나쯤 있을법한 그런 술집. 그래, bar라기보다는 싸구려 술집. 원색천지의 천박한 인테리어와 왠지 불결해보이는 안주거리와 몇 년은 족히 묵었을 술들. 하지만 그런 술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끈끈한 유대감. 그 모든 이미지의 상징은 바로 저 여인네였다. 남편도 아니고 애인도 아니고 자식도 아닌 저 꿀꿀 돼지를 꼭~ 안고 주무시는 우리의 여사장님.

 

이름도 성도 모르는 어떤 남정네와의 하룻밤으로 자신이 태어난거라 생각하며 살아온 주인공은, 그 천박해보이던 엄마가 사실은 첫사랑만 기다리며 그 곳을 지켜온 여인이라는 걸 알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런지. 만약 나라면 미안한 기분에 죄스러워지기보다는 오히려 더 미워질 것같다.

 

차라리 이 남자 저 남자만나면서 멋대로 살아온거라면 마음 놓고 미워할텐데. 아니면 진작에 사실대로 말해줬다면 지금껏 미워하지않고 사이좋은 모녀로 살아왔을텐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되서 화가 났을꺼다. 그러다가도 잠못드는 딸을 위해 귀여운 속임수도 생각해냈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면 모든 감정이 사라락 녹아버리겠지만.

 

새빨간 립스틱에 화려한 곷무늬 원피스를 입고 천박한 술집 마담의 겉모습을 한 그녀지만, 알고보면 그녀에게도 잊지 못하는 첫사랑이 있었고, 너무나 사랑하고 소중해서 다가가지 못한 딸이 있었고, 이제 곧 세상을 떠나야하는 병이 있었다.

 

그래서 더욱 더, 다른 영화에 등장하는 bar의 여인네들보다 멋졌고, 친근했고, 다가가고 싶었다. 맘같아서는 화면 안에 쏙 들어가 뜬금없이 백마가 앞을 지키고 있는 지저분하지만 다정한 그녀의 가게에 들어가 일본주든 양주든 함께 그 낡은 소파에서 술 한잔 마시고 싶었다.

 

난 현실의 인간이기에, 조용히 매화향 나는 그 술병에 커피빈에서 슬쩍해온 스트로우를 넣고 쭉쭉 빨아들이는 것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