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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가족보다 소중한 타인에 대하여

신경숙작가의 '엄마를부탁해'가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으며 출간되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의외였다. 제목만 봐도 감이 팍 오는 그 감정을, 서양에서도 공감하다니. 다른 면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가족에 대한, 엄마에 대한 절절한 감정을 아시아중에서도 우리나라만큼 깊게 느끼는 나라가 있을까.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니라 엄마, 아빠. 이 각각의 두 음절짜리 한국어는 듣기만해도 눈물이 왈칵 날만한 뭔가를 가지고 있는 것같다.

 

하지만 때때로 영화 속에는 가족보다 더 가족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분명 현실 속 어딘가에도 그렇게 살아가는, 피보다 진한 관계로 엮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겠지.

 


메종드히미코


sex and the city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게이에 대한 인식은 참 밝아지고 친근해졌다. 많은 여자들이 그들을 궁금해하고, 친해지고 싶어할만큼. 하지만 그럼에도, 예전보다 나아졌다뿐이지 그들은 아직도 소수자. 틀린게 아니라 다른 것뿐인데도 소외받거나 차별당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 메종 드 히미코.

 

한 여자의 남편이었고 한 아이의 아버지였지만, 지금은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아닌 늙어버린 게이들의 안식처. 옆 집 몹쓸 할망구의 불결한 눈초리도, 철딱서니 꼬맹이들의 순진해서 더 잔인한 괴롭힘도, 메종 드 히미코의 모두가 함께였기에 괜찮았던거겠지. 코피가 철철 흐를정도로 섹시한 오다죠와 색다른 모습의 시바사키 코우가 주인공인냥 나와있지만, 진짜 주인공은 곱고, 아름답고, 우아하고, 귀엽고,그리고 마음이 여린.. 게이 할아버지들이었다. 가족에게 보내진 루비의 마지막 모습은, 억지로 엄마와 헤어지는 다섯살 아이마냥 애처로웠는데..



 


 

텐텐


오다기리 죠가 주연한 또 한 편의 영화 텐텐. 정확한건 아니지만, 영화 속 대사로 짐작해봤을 때는 우리말로 '산보'정도의 뜻이 아닌가싶다. '산책'보다는 왠지 '산보'의 느낌.

 

오다죠의 헤어스타일에서 부터 짐작이 되겠지만, 적잖이 독특하고 황당한 스토리의 영화다. 그리고, 사뭇 감동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부모에게도 버림받고 빚더미에 앉아 찌질하게 살아가는 한 청년과 그 청년에게 돈을 받아내야하는 빚쟁이. 추격전이라도 벌이며 살벌하게 치고박고 싸워도 모자랄 판에, 아주 다정히 도쿄를 거닌다.

 

같은 집에서 밥도 먹고 잠도 잔다. 마치 오래전 헤어진 아버지를 만난 것처럼. 훌쩍 커버린 아들을 만난 것처럼 정겹게. 마지막장면에서도 울컥했지만, 놀이동산에서 두 사람이 놀이기구타는 장면에서는 차라리 저 두사람이 진짜 부자지간이었다면 좋을텐데싶었다. 우리나라 막장드라마라면 충분히 그렇게 만들어줬을텐데. 쿨~한 미키 사토시 감독은 일드 시효경찰 마냥 산뜻하게 끝내버렸다.

 



 


아저씨


새론아, 넌 전생에 전 인류를 구했을거야 그치?ㅠㅠ 아직도 가슴이 콩닥거리는 원빈의 아저씨. 만약 극중에서 아저씨의 아내와 뱃 속의 아이가 살아있었다면, 그래도 아저씨는 소미를 찾으려고 저렇게 피투성이로 싸웠을까? 아마도 아니겠지.

 

그랬다면.. 애시당초 그 전당포에서 숨죽여 살지도 않았을테고, 소미도 만나지 않았겠지. 마찬가지로 소미에게 듬직한 아빠와 다정한 엄마가 있었다면, 전당포의 아저씨와 친하게 지내는 일은 없었을꺼다. 불행한 두 사람 서로가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주면서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던 그 때에 그 악당들이 등장했기에, 아저씨는 딸을 살리려는 아빠의 마음으로 달려든거겠지.

 

원빈데려간 경찰아저씨들 미워! 영화지만, 아저씨가 경찰서가서 재판받는 도중에 이 사건이 대대적으로 알려져서, 사람들이 아고라청원을 해서, 법원도 정상참작하여 사회봉사활동이나 벌금같은 걸로 마무리해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소미가, 아저씨가 외롭지 않을테니까.






하모니


 참 극단적인 설정. 교도소의 여성들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사형선고를 받은 할머니는 가족에게 버려졌고, 애기엄마는 18개월짜리 아기를 떠나보내야한다.

 

그런 가슴 절절한 사연들이 넘쳐나는 곳, 여자교도소에서 그들의 하모니가 시작된다. 노래로 만들어지는 하모니가 아니라, 온갖 슬프고 아픈 일들을 다 안고있는 사람들이 함께하며 만들어지는 하모니.

 

정말이지.. 이런 영화 싫다. 펑펑 울다가 결국은 눈감고 극장문 밖으로 나오게 만드는 스토리. 지금에와서 문득 생각한건데, 저 사람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버리고 나면.. 누군가는 하늘나라로, 누군가는 바깥세상으로, 누군가는 계속 저 곳에서. 그렇게 다 헤어져버렸을 때, 그 때는 어쩌나.. 싶어서 또 슬퍼진다.

 


 

 


8번가의기적


예전에는 꽤나 자주 TV에서 방영해줬는데, 언젠가부터 보기 힘들어진 8번가의 기적. 동화랄까 판타지랄까 오묘한 감동을 안겨주는 이 영화를, 어릴적 나는 볼 때마다 울었더랬다.

 

단순히 어린나이의 순수함때문이었는지 영화의 완성도가 높아서였는지 확인을 하고 싶지만, 아무리 찾아도 이 영화가 없네. 그냥 우연히 날아온 UFO가 삐그덕 고장이 났다가 사람들이 고쳐주고하는 그런 내용이었으면, 참 심심했을텐데.

 

아주 오래전부터 살아온, 많은 사연들이 남아있는 8번가 건물이 헐리느냐 마느냐하는 그 상황이 UFO가족의 이야기와 겹쳐지는게 신선했고 훈훈했었지. 재개발로 고향을 잃은 나같은 사람은, 저 8번가 식구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이북에서 오신 할머님 할아버님들의 향수병도 슬프지만, 분명 내가 태어나고 뛰어놀던 예쁜 시골이 회색 아파트숲으로 변해버린걸 보는 것도 꽤 슬프거든.

 

다행히 영화 속 8번가의 노부부와 임산부, 독특한 화가아저씨(?)는 사랑스러운 UFO일가 덕택에 삶의 터전을 지켜냈다..고 기억하고 있는데 맞던가? 확실하게 기억하는 건 쪼그마한 UFO가 삐그덕삐그덕하면서 힘겹게 타일조각을 붙이던 장면. 그 부분에서 정말 펑펑 울었었지. 사람도 아니고 동물도 아니고 사실은 스텝들이 쇳조각가지고 만든 기계인데, 그땐 뭐가 그리 슬펐던걸까?

 





노킹온헤븐스도어


이 두사람보다 더 끈끈하게 묶인 가족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피가 물보다 진하다고는 하지만, 오늘이 될 지 내일이 될 지 모르는 그 순간. 1분 뒤가 될 지 1초 뒤가 될 지 알 수 없는 죽음의 그 순간으로 함께 다가가고 있는 두사람. 아플 때, 힘들 때, 슬플 때, 지칠 때.. 그럴 때 옆에 있어주는 사람의 감사함을 아주 조금이라도 느껴봤다면 저 두 사람의 관계가 가족보다 약하다고 말하진 못할거다. 마지막 장면, 남겨진 그 이의 뒷모습은 떠나버린 그 이의 뒷모습보다 훨씬 외로워보였다. 가족만큼, 아니 가족보다 소중한 친구를 잃은 그 순간에.


떠올렸더니 또 가슴이 시리다. 그러니, 듣자, 이 노래.




가사진짜.. 이건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