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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청춘에게 바치는 영화

방황하는 청춘이라, 이 얼마나 식상한 문구인가..싶으면서도 이 얼마나 정확한 표현인가싶다. 방황을 해야 청춘인거고, 청춘이라면 방황할 권리와 방황할 의무가 있는거잖아. 10대이든 20대이든 나이와는 상관없이, 쓰지만 달콤한 방황중인 청춘들에게 바치는 영화들




비트


영화 친구만큼이나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의 비트. 좋게 말하면 파이터, 나쁘게 말하면 양아치인 남주인공과 그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 임창정과 유오성이 그 친구들로 나오는데, 여기에서 유오성이 맡은 역할이 참 멋졌더랬다. 어찌보면 남주인공보다 더 멋졌지.


건들거리며 주먹질하는 과거를 접고, 착실하게,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하지만 모든 일이 생각되로 되지않는다. 세상은 냉정하고 잔인하게 청춘들의 뒷통수를 친다. 같은 세대가 보면 슬프지만, 그 윗세대가 보면 당연한 이야기. 당시에 봤을 때는 멋진 화면과 비주얼에 홀리고, 불쌍한 스토리에 가슴이 저렸는데 10년도 더 지난 지금 다시 보니 그 느낌이 아니네. 나도, 나이를 먹어가나보다.


 


 


태양은 없다


아마 10년 전 그 때는 정우성이 한국의 제임스딘쯤 되는 이미지였나보다. 실제로 어울리기도 하고. 태양은없다의 두 주인공은 모두 상처받은 영혼. 한 명은 권투챔피언이라는 꿈을 잃었고, 한 명은 빚에 쫓기며 시궁창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양아치. 그 두사람이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


이정재가 연기하는 그 찌질한 캐릭터, 어디에나 한 명씩 있긴있나보다. ‘저거저거 딱 ***그 놈이잖아’하는 생각, 내 친구들도 했다는 걸보면. 정우성이 확실히 주연인 것같긴한데, 그보다는 비열하고 꼴사나운 이정재가 더 기억에 남는건, 그가 조금 더 현실적인 캐릭터여서. 정우성은 쓸데없이 멋지잖아? 청춘이라고 다들 저렇게 멋지진 않단말이지. 벌레먹은 과일이 달듯이, 상처받은 영혼이 진국인 법. 그 해에 남우주연상을 휩쓴게 정우성이 아니라 이정재였던걸 보면, 높으신 분들도 그렇게 생각했나보다.


 


 


고양이를 부탁해


다시봐도 참 현실적인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의 주인공들은 비트의 고소영처럼 신비롭거나 태양은없다의 정우성처럼 멋드러지지 않다. 말그대로 찢어지게 가난한 친구와 너덜너덜할만큼 상처투성이인 친구, 그리고.. 모든게 다른 친구들이지만 결국 모두가 지긋지긋한 그 현실이라는 것때문에 아파하고 고민하며 둥둥 떠있다.


최근 개봉한 마이 블랙 미니드레스를 이 영화에 갖다대는 분들이 계시던데, 개인적으로는 그 비교가 참 황당하다. 그 영화를 폄하하는 게 아니라.. 저 어린 친구들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다르거늘. 고양이를 부탁해는 그렇게 몰캉몰캉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어둡고 조용하게, 조바심이 날 정도로 무미건조하게 진짜 청춘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한숨짓게 만들지만 그래서 진짜같은 영화.


 


 


69 식스티나인


왁자지껄한 한 여름밤의 불꽃놀이같은 청춘영화. 69식스티나인은 밝고 웃기고 예쁘다. 그리고 아주아주 통쾌하고 깔끔하다. 어릴 때는 어른들이 하는 말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때는 뭐라도 해야돼. 사고를 치던, 말썽을 부리던, 다 괜찮으니까 뭐든 해야돼.” 지금에 와서 그 말이 확실히 와 닿는다


. 고등학교때나 대학교때나… 당시에는 이런저런 것들로 머리가 깨질만큼 정신없지만, 이제 조금 지나고보니 모든게 애틋해서. ‘내가 간이 부었었지’싶은 황당한 말썽들도, 친구들과의 사소한 일상도 모두모두 예뻐서. 이 영화를 찍은 감독도 아마.. 그런 마음에서, 그런 기분으로 만든게 아닐까싶다. 새파란 애송이들이 조직을 만든답시고 매일같이 모여 떠들어대는 모습이나 예쁜 여학생을 보고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다보면 어느새 나도 저 나이때의 나와, 내 친구들의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어쩌면 그렇게 정신없고 황당하지만, 그래서 기분좋은 축제가 청춘일지도 모른다.


 


 


바이준


한동안 잊고있었던 바이준. 그저 멍때리며 봤던 이 마약같은 영화를 다시 봤더니 내가 그새 속물이 다 되었구나싶다. 이리저리 잔머리굴리며 분석하게 되더라고. 준이라는 친구가 그 두사람의 정신없던 10대, 아까운 청춘을 뜻하는 거고, 그 친구가 죽었으니 이제 두 사람이 어른이 되야만 하는거구나. 준이라는 이름도 6월, 새파란 초여름을 뜻하는건가 등등등. 쓸데없이 계산하고 있는걸 문득 깨닫고 슬퍼졌다. 젠장, 이렇게 보면 안되는 영화인데. 아까운 영화인


데. 런닝타임 내도록 마약에 찌든듯한 캐릭터들과 화면과 스토리. 영화에 빠져들면 들수록 나까지 취해버린다. 그래서, 황당할 수도 있는 그 마지막 장면이 슬프다. 준이는 그 두사람에게만 안녕하는게 아니라, 나에게도 이제 깨어날시간이라고 화면 밖으로 밀어내니까. 청춘이라는 단어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는 그 시기는 그렇다. 당시에는 마냥 상처만 받는것 같고 짜증나고 시궁창같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벗어나려면 아쉽고 그리워진다. 어이없는, 청춘의 아이러니.


 


 


스트로베리 쇼트케이크


음, 잠깐 망설였다. 이 Strawberry Shortcakes라는영화가.. 청춘영화라는 타이틀에 맞을까하고. 그리고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고 겉모습이 무슨 상관인가. 보기에는 멀쩡히, 멋지게 일상을 살아가는 어른들일지라도 알맹이는 고민덩어리 컴플렉스 덩어리들인걸.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나조차도.


간략하게 말하자면, 고양이를 부탁해의 10년후 버전쯤 되겠다. 중심인물이 모두 여자인 점도 있지만, 분위기가 정말 비슷하다. 무슨 다큐멘터리마냥 건조하고 딱딱하게 보여주는 화면. 그리고 그 화면안에 생생하게 보여지는 인물들의 에피소드. 한마디로 흥미롭다.

삐까번쩍 화려하게 배경넣고 대사로 죄다 설명하며 주제를 들이대는 영화들보다, 이런 쪽이 훨씬 보는 맛이 난다. 네 명의 캐릭터 모두 걱정스럽고 불안하지만, 특히 매일밤 관 속에서 잠드는 그 여자분과 꾸역꾸역 먹고는 모두 토해내는 그 여자분의 모습이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주체할 수없는 외로움과 불안함은 그런 식으로 분출되는걸까? 그런 우리를 구원해줄 신따위는 정말 없는걸까.


 


 


청춘스케치


아아.. 딱 스무살때, 당연한듯이 수업을 빠지고 학교앞 비디오방에서 아이스커피 쭉쭉하며 봤던 영화. 내 영화라고 부르고 싶을만큼 편애하는 Reality Bites. 당시에도 옛날영화였는데 지금은 정말 고전영화가 되버렸다. 94년도에는 외국영화 수입해서 배급하는 분들의 센스가 남달랐나보다. 국내에는… 청춘스케치로 개봉했다. 이게뭐니 정말… 속상하다.ㅜ


그러고보니 이 네사람은 비교적 엘리트네. 아마 대학교 과친구들인가 서클친구들인가 그랬던 것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 그래, 얼굴이 멋지다고, 학력이 높다고 방황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있나. 모두 저 나름대로의 이야기가 있겠지.


레이나가 우여곡절끝에, 정말 고생끝에 만들어낸 청춘다큐멘터리는 어른이라는 사람들에 의해서 우스꽝스런 코미디가 되어버린다. 그 설정 자체가 모든 걸 말해주는 완전 멋진 시놉.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우리의 애처로운, 방황하는 중생들. 사랑스럽다.


편애하는 영화이니만큼 좋아하는 장면을 뽑자면, 트로이가 레이니에게 “레이니, 이게 우리에게 필요햔 전부야. 몇 개의 담배, 한 잔의 커피, 그리고 약간의 대화”라고 말하는 그 장면. 크~ 정말, 청춘이라는 그 단어를 이렇게 멋지게 표현할 수 있는걸까? 나도 누군가 불안불안한 현실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런게 청춘이라고. 그러니, 애써 헤어나오려고 하지말고 즐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