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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영화에 나오는 다양한 부부

뜬금없이 왜 이런 생각이 들었던 걸까?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인가, 주변에서 하나둘씩 결혼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불안해지기라도 한건가. 모르겠다. 그냥 문득 ‘연인’이 아닌 ‘부부’가 나오는 일본영화들이 한 편씩 떠올랐다.


‘결혼, 왜 해야 하는가’싶게 만드는 일본영화




스윗리틀라이즈


어찌보면 쿨하고, 어찌보면 무미건조한 부부. 테디베어 디자이너인 아내도, 평범한 회사원 남편도 다른 이성에게 눈을 돌린다. 그러고는 담담하게 그 관계를 정리하고 부부로 돌아온다. 적어놓고 보니 참으로 어이없기도 황당하기도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는 전혀 그런 걸 못 느꼈네. 나카타니 미키에 또 한 번 반하고, 예쁜 집에 반해서 그랬는지도. 나름 해피엔딩인데 왠지 찜찜해. 다른 영화들에 비해서 아주 현실적이라고 느꼈던, 그래서 오히려 더 결혼과 부부라는 관계에 대해서 회의감을 가지게 되는 아이러니.


 


 


사요나라 이츠카


영화에서 남자는 끊임없이 ‘好청년’소리를 듣는데, 극의 진행과 함께 그게 반어법이라는 걸 보여준다. 아내의 입장에서도, 그 여자의 입장에서도 참으로 몹쓸 남자. 형편없는 남자. 같은 여자임에도 사진 속 주인공의 아내가 더 멋지다. 살짝 소름돋기도 하지만, 직접 그 여자에게 다가가 멋진 모습으로 정리시키고, 끝까지 아내로 남아있음이 멋지고, 조금은 처량하다. 분명 이러한 모양새로 남은 부부가 많을 것같다는 짐작에, 정말 결혼하기 싫어지는 영화.


 


 


비용의 처


국적과 시대를 초월하는 불문율. 예술가의 아내는 무조건 고생한다. 아, 현실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그렇게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다. 이 영화 ‘비용의 처’처럼. 내가 저 아내였다면 진작에 어리고 사랑에 가득 찬 눈빛으로 날 바라봐주는 그 남자와 눈 맞아 글쓰는 남편따위 쫓아버렸을지도. 이런 영화들을 보면 ‘역시, 결혼따위 할 게 못되는 것이야’싶다. 하지만, 자고로 영화는 현실보다 아름다운 법. 보고나면 치유되는 뭔가가 있어야 하는 법. 마냥 예쁘고 애틋하고, 결혼을 못한다면 연애라도 하고 싶어지는 영화가 훨씬 더 많다.


 


 


‘이런 게 결혼이라면, 나도 언젠가…’싶게 만드는 달달한 일본영화


 


달링은 외국인


만화가를 꿈꾸는 여자와 외국인 남자가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에 골인! 화사한 화면에 귀여운 두 사람에게도 갈등은 있었으나 자세히 기억이 안나네. 그저 저 외국인남편이 길~다란 몸을 한껏 웅크리고 아내를 바라보던 애처로운 눈빛만 또렷하게 남았다. 이 영화를 볼 때는 밀크티를 준비하는 게 좋다. 안되면 데자와라도 한 캔정도.


 


 


노란 코끼리


참으로 이상적인 일상을 살고 있는 어린 신혼부부. 산 속 마을의 구옥에서 남편은 소설도 쓰고, 요양원도 다닌다. 아내는 작은 심장으로 동물, 식물, 자연과 대화를 나눈다. 아침과 저녁은 직접 키운 채소와 과일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아 먹는 진정 자연적인 일상. 갈등부분에서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못하고 답답함에 울어버리는 모습이 왠지 확 와닿더라. 그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는 광고의 한 장면처럼 현실감이 없었는데, 두 사람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끙끙 앓다가 다시 치유되는 후반부가 좋았다.


 


 


굿,바이


첼리스트였던 남편이 하루 아침에 실직자에서, 연이어 납관사로 다른 삶을 살게 된다면 과연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도 영화 속 아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같다. 부부라는 관계를 떠나 죽음과 관계된 장례사라던가 납관사에 대한 편견이 어떠한 지 직접 느끼게 만드는 영화. ‘굿,바이’라는 제목처럼 이 영화도 담백한 해피엔딩이라 다행이다.


 


 


도쿄맑음


한번쯤은 이런 사랑, 받아 보고싶다. 아름답고 매혹적이지만 지나칠만큼 마음이 여리고, 깊은 우울의 늪에 빠져버리곤 하는 여자. 사진가 남편은 카메라로 그녀의 모습을 담는다 진정으로 그녀의 동반자가 되려 노력한다. 처음엔 비내리는 날 보여준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저건 뭔가’하며 황당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조금은 어른이 되어 보니 그 장면이 그렇게 감동적이더라. 남편의 마음이 애틋해서. 자주는 아니더라도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건조할 때, 삐그덕거릴 때는 연애하던 곳이나 신혼여행으로 갔던 장소로 여행을 떠나는 게 도움이 된다는 공부도 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일본영화에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소재, 환생. 이런 류의 영화가 몇 편이나 흥행에 성공하고 명작으로 남아 있는 걸 보면, 죽은 이에 대한 그리움을 누구나 가슴 속에 품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부가 함께 본다면.. 나보다 더 확연하게 주인공들의 감정에 몰입되지 않을까? 영화가 끝나면, 조금은 더 서로의 존재와 평범한 일상을 소중히 여기게 되지 않을까?


 


 


츠레가 우울증에 걸려서


이 영화를 보고 알았다. 우울증은 완치되지 않는 병이라는 걸. 그저 우울의 깊이가 얕아지기를, 그 감정이 찾아오는 빈도가 멎어드기를 바랄 수 밖에 없다. 어쩌면 부부도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아닐런지. 기쁘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 때도 있고, 슬프고 아프게 만들어 버리는 때도 있겠지만 좋은 시간이 더 많기를 바라며 언제나 함께 해야 할 운명. 사카이 마사토가 보여준 욕실에서의 오열씬을 보면서 오랜만에 울컥했다. 마냥 달콤할 줄만 알았던 영화를 더 인상깊게 만들어 준 명장면.


 


 


해피해피브레드


한 때 펜션 붐이 불었다. 너도나도 한적한 시골 어딘가에 예쁜 펜션을 짓고, 유유자적 여행객들을 맞으며 여유로운 삶을 꿈꿨다. 바로 이 영화 ‘해피해피브레드’의 부부처럼. 워낙 잔잔한 분위기의 영화고, 손님으로 온 여자의 이야기가 메인으로 나와서 이 부부의 갈등하는 모습조차 나오지 않는다. 정말이지 보는 내내 꿈꾸는 기분으로 ‘저렇게 살고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 공기좋고 물좋은, 인심도 좋은 조용한 산 속 마을 어딘가에 예쁜 집을 지어서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아침에는 빵굽는 냄새로, 오후에는 이웃과 펜션손님과 함께 먹을 저녁을 준비하는 냄새로 진동하는 집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한 번 이 영화들에 나온 주인공 부부들을 떠올리면서 느낀다. 부부라는 관계는 참 다사다난 하겠구나, 라고. 함께라는 이유로 좋은 점도 많고, 나쁜 점도 많고. 서로에게 감사하다가도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겠구나, 라고. 그래서 특별한 거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