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의 사전적정의가 '끝나는 부분'이라는 걸 몰랐다. 몇몇 소설의 에필로그를 보며 어렴풋이 엔딩 이후의 또 다른 이야기라고 짐작했는데 아니었군. 영화에도 에필로그가 존재한다는 것도 몰랐다. 분명 어릴 때봤던 명화극장에서 보여주던 옛날 영화는 사자가 어흥하면서 제작사 로고가 뜨면서 끝났단 말이지. 아니면 까만 화면에 캐스트와 스텝들 이름이 주욱 올라가면서 끝나거나. 그래서 당연히 소설에서만 선택적으로 존재하는 줄 알았거늘. 언젠가부터 영화는 분명 끝났는데, 엔딩크레딧을 에필로그처럼 활용하는 영화들이 눈에 띄인다. 영화는 끝나고 엔딩곡이 극장에 흘러나오는데도 자리를 뜰 수 없게 만드는 영화들.
영화 '안경'의 엔딩장면. 이렇게 끝나는 듯하더니
엔딩크레딧과 함께 촬영하면서 찍은 배우들의 사진을 한 장씩 보여준다. 개인별로 찍은 사진도 있고, 영화에 나왔던 장면을 촬영하다가 찍은 것같은 사진들도 있는데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저 촬영지에 나도 같이 있었던 것같은 느낌이 되서 좋더라는. 영상과 마찬가지로 사진들도 하나같이 감성돋는 느낌이 충만함.
공항에서 다시 만난 두 남녀. 비행장이 바닷가의 전경으로 바뀌면서 로코다운 마무리를 짓는구나 했더니,
메인 커플이외에 등장했던 다른 커플들의 후일담이 요렇게 쨘. 오로지 주지훈이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기대없이 봤는데 유쾌하게 시간때우기에는 괜찮은 영화다. 마지막 장면까지는 덤덤하게 '역시 주지훈..♥'하며 팬심만 충만했는데, 이 영상을 보면서는 큭큭 웃게된다. 특히 마동석 아저씨랑 구잘 부분이 인상적!
제목과 예고편으로 19세미만 관람불가임을 마구 어필하며 홍보했던 지성과 김아중의 영화. 나름 개운하고 훈훈한 분위기로 끝나는가 했더니.
구상 당시의 초심을 잃지 않은 감독님은 이렇게 므흣하고 코믹한 에필로그를 따로 챙겨주신다. 덕분에 진짜 실컷 웃었다. 본 편의 어떤 장면보다도 웃기더라.
중후반부에서 펑펑 쏟아내던 눈물을 겨우 닦아내며 진정이 될 즈음, 철수의 뒷모습을 보여주면서 영화의 끝까지 관객을 울려버리는 '늑대소년'
화면은 그대로 이어져 눈밭에 홀로 남은 철수가 눈사람을 만드는 모습 위로 엔딩크레딧을 올린다. 이 부분을 안봤더라면 가슴이 덜 아팠을텐데. 캡쳐만 다시봐도 울컥하고 찡하다.
이 영화 개봉하고 얼마 안되서 송중기가 군대를 갔던 것같은데.. 내년에 제대하겠구나. 세월 참 빨라.
아주 유명한 영화는 아니지만,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좋았다고 평하는 '로스트 인 베이징' 그저 핫한 스타인 줄만 알았던 판빙빙을 비롯, 주연배우들의 연기가 정말 일품이다. 특유의 씁쓸한 엔딩에 매료되서 멍때리고 있는데 베이징의 모습을 그리던 영상이 조금씩 한 대의 차에 줌인되더니 끝난 줄 알았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시금 보여준다.
처음에는 엔딩크레딧에 이런 영상이 숨겨져 있다는 걸 모르다가 다시 보면서 알게 되었는데, 이걸 보고나니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더 현실감있게 느껴지더라. 영화가 아니라 다큐를 본 것처럼. 덕분에 진짜 인상적인 영화로 남았다.
위의 영화들은 그래도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시에 짧은 영상이나 사진을 함께 보여준다. 그래서 놓칠 확률이 적은데 이 영화는 제대로 숨겨놨다. 순정만화가 원작이라는 걸 알기에 '이렇게 끝날리가 없어..'하며 슬퍼한 나를 바보로 만들었다. 마지막 장면이 나오고, 화면이 까맣게 바뀌며 천천히 엔딩크레딧이 올라온다. 무수히 많은 글자들이 올라가길래 끝인 줄 알았거늘! 그 글자들이 전부 올라가고 필름이 끝나야 하는 그 시점에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 나처럼 인내심없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영화다.
예상대로의 '진짜' 엔딩을 보면서 시큰,했다가 울컥,했다가 달달함까지 느끼며 안도감을 느끼는 동시에 아쉽기도 했다. 숨겨져 있던 이 에필로그가 없었다면.. 그 엔딩도 나름 여운이 남아서 괜찮았을 것같기도 하거든. 만화 '파라다이스 키스'를 잊을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가 그 슬픈 아쉬움의 엔딩이었는데, 영화화 하면서 쓸데없이 해피엔딩을 만들어버리는 바람에 실망했던 기억도 나고.
이건 영화는 아니지만 '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좋아해'로 번역된 위의 영화와 비슷한 경우라 찾아왔다. 기무라 타쿠야와 야마구치 토모코의 일본드라마 '롱 베케이션'이다. 소설, 영화, 드라마 그 어떤 분야에서도 일본문화에는 전혀 관심없던 나를 일드 오타쿠, 일본영화 매니아로 만들어버린 드라마. 요즘 다시 보면 왜 그렇게 푹 빠져서 봤나 싶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말그대로 매료되었던.
처음 보고는 홀딱 반해서 두 세번을 연이어 다시 봤다가 한 3년쯤 잊고 살았다. 그러다 오랜만에 다시 다운받아서 하루만에 마지막회까지 다 보고는 개운해져서 재생해놓은 채 다른 짓을 하고 있었는데.. 그랬는데.. 분명 비디오파일이 끝나서 프로그램이 멍때리고 있어야 하는데!! 기무라 타쿠야와 야마구치 토모코가 뛰고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턱시도를 입고! 웨딩드레스를 입고! 이 에필로그라고 숨겨놓은 영상을 보고는 한동안 배신감에 부들부들 떨었더랬지. 어차피 이러나 저러나 해피엔딩인건 마찬가지라지만 이 부분을 놓쳤다는 사실이 꽤나 충격이었다.
요즘은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도 사람들이 대부분 일어나서 나가고 상영관에 조명이 켜질 때까지 기다리게 된다. 다운받아서 볼 때는 혹시나 싶어 엔딩크레딧이 올라와도 재생창의 끝까지 확인을 해본다. 그러면 항상은 아니지만 종종 감독님들이 때로는 귀엽고 수줍게, 때로는 의미심장하게 준비해놓은 선물같은 이야기를 또 한 편 만나게 된다. 위의 영화들처럼 말이지.
마지막의 두 편처럼 아예 엔딩크레딧 뒤로 숨겨놓는 건 심술궃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런 에필로그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편이 더 좋다. 뭔가 끝맺음까지 정성스럽게 제대로 만든 걸 보는 느낌이라 좋고, '그리고, 그 후의 이야기'처럼 현실감이 느껴지는 것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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