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누도 잇신과, 츠마부키 사토시와, 그리고 그녀, 우리의 조제 이케와키 치즈루를 알게 되었을 뿐 아니라 마음 깊이 아끼게 된 계기가 되어 준, 이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벌써 이 영화에 대해서 많은 글을 써두었다.
온전한 여고생 감성의 화면이면서도 누구나 조제를 동정하고 사랑하고 안타까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게 만들어버린, 내가 생각하는 ‘일본영화’의 절정판이다. 우에노 쥬리가 ‘노다메’로 확 떠버리면서 그녀의 데뷔작으로 다시 한번 거론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나는 쥬리양보다는 조제를 사랑한다.
이건 그냥,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러브스토리이다. 감정의 동요를 꾹꾹 참고 본다면 꾀나 야하기까지 하다.-츠마부키, 이 영화에서 완전 복받았다.ㅋ- 하지만 아무도 이 영화를 가벼운 연애물이나 자극적인 이야기로 기억하지 않는다. 단지 조제가 장애인이라서가 아니다. 왜일까.. 마지막 그 장면때문일까?
아마도 그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는 츠네오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츠네오와 똑같이, 이야기를 처음 듣기 시작할 때는 담담하다가, 그 마지막에 가서는 온갖 죄책감이랄까 죄악감이랄까 미련이랄까하는 알 수없는 복잡한 슬픔이 밀려닥치는 것이겠지. 우리도 다시는, 조제를 만날 수 없을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어딘가에 처박힌 곳에서 책만 쌓아놓고 책만 읽으면서, 꿈만 꾸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는 그런 생각.
조제는.. 할머니와 사는 둘만의 궁전에 살았다. 허름하기 짝이 없는 빈민가. 하지만 그 문을 열면 달큰한 계란말이 냄새가 풍겨나고 방 안에는 주워온, ‘쓰레기’였던 물건들이라고하기에는 너무나 동화스러운 물건들이 가득 차 있다. 조제는 굉장히 정말 굉장히 강한 여자이지만, 또한 굉장히 더더 굉장히 순수한 여자, 아니 소녀였다.
음, 이런 장면가지고 연기력 어쩌고하면 실례겠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영화에서 츠마부키는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맛있게 먹는다. 그래서.. 저 스파게티 먹는 장면이 나올 때쯤에는 영화 멈춰놓고 라면이든 국수든 스파게티든 꼭 면 종류를 만들어놓고 다시 재생버튼을 누르게 된다. 정말, 최고의 연기력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츠마부키 상.음.
한 번은 나와 다른 성별의 친구와 이 영화를 보다가 내심 민망했었다. 지금이라면 누구랑 보든 괜찮을 것같은데, 당시만해도 나름 어린 나이였기때문에 아무리 편하다고 해도 남자와 여자인 친구끼리 보기에는 불편했었다.아까도 말한 것처럼 츠마부키 상, 완전히 복을 받으셔서 세 분의 여성과 키스신이 등장하시고 세 분의 여성과 베드신이 등장하시며 수위도 우리나라영화였다면 힘들었을 정도의 수위. 그런데 그 장면들보다도, 바로 여기. 스치는 조제의 손을 꼭 잡는 츠네오의손. 이 부분이 나는 제일 두근거렸다. 혼자 보면서 얼굴이 발그레 해졌을 정도로 설레였다.
예전에는 이런 부분이랑 이런 부분이 참 슬프다고 콕 집어 말하곤 했었는데, 요즘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컷 한 컷이 모두 슬프다. 츠네오는 시간이 지나고 무덤덤하게, 아니 오히려 다른사람의 이야기를 하듯이 조제의 이름을 꺼낼 정도로 괜찮아졌는데 나는 아직 그녀의 한 마디 한 마디와 그들의 기억 한 장면 한 장면이 익숙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점점 더, 다시 그들의 이야기를, 그녀의 이야기를 들춰볼 때마다 더 깊게깊게 슬퍼져온다.
이 영화를 몇 년만에 다시 보면서 새삼 느낀 것들. 이 때의 조제가 얼마나 행복하고 눈부신 미소를 지었는지, 모텔열쇠에조차 분홍빛조개껍질이 달려있는 게 정말 동화같다던지, 그리고 무엇보다. 할머니가 얼마나 자책했을지.
그냥,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전에는 할머니가 조제를 집에만 가두려는 이유나 외출할 때도 유모차에 이불까지 덮어서 숨기고 몰래 다니는 이유같은 거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굉장히 당연한 결론이 나왔다. ‘지키기위해서.’ 남들보다 어딘가가- 신체적인 그녀의 장애일 수도 있지만, 다른 무언가도- 결여된 불쌍한 조제를 모든 사람으로부터, 모든 것으로부터 지켜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예 그녀를 할머니가 아닌 사람으로부터, 그녀들의 집이 아닌 곳으로부터 차단시켜놨던 건데, 그랬는데, 어쩌다 우연히 맘 좋아보이는 청년에게 빈틈을 보인 것이 화근이 되버렸다. 지금껏 잘 지켜왔는데, 꽁꽁 숨겨왔는데,-할머니의 착각이라 할지라도- 별 생각없이 집에 들였던, 따뜻한 밥을 먹였던 그 남자가 어느샌가 그녀만의 허름한 성에 들어와버린 것이다. 조제의 마음에도 동시에.
조제가 하염없이 울었던 그 날에, 할머니는 얼마나 후회를 했을까. 얼마나 자신이 원망스러웠을까. 조제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날부터 할머니는 끙끙 앓다가 돌아가셨을지도 모른다, 하는 생각들이 끊임없이 들었다. 할머니에 대한,,
언젠가 페이퍼라는 잡지에 실린 글 중에 조제의 다음이야기에 관한 내용이 실렸었는데… 영화의 결말에 이어서 요즘 조제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지에 대한 짧은 허구, 랄까. 글쓴이의 희망사항.
자동휠체어를 탄 조제가 장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최근 단골이 된 카페에 들어간다. 그리고 카페 주인이었는지 종업원이었는지 하는 남자와 일상적인 대화를 한다. 뭐 대충 그런 내용으로, 조제가 다시 사랑할 수 있길바라는, 그런 희망.
글쎄.. 나는, 조제가 그 방에서, 그 자그마한 성에서 츠네오와의 기억에 묻혀서 그리워하기도 하고, 흐뭇해하기도 하면서 계속 아무와도 만나지 않고 혼자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언젠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라도 츠네오가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그 때는 조금 더 다른 그들의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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