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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당신에게, 모리사와 아키오

면허가 없다, 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그 나이가 되도록 면허도 안따고 뭐했냐고 묻는다. 멋적게 웃으며 넘어가면서도 ‘따놓고도 처박아놓는 사람이 더 많잖아..’라고 늘상 생각했었지. ‘왠만하면 걸어다니고, 바쁠땐 지하철이랑 버스타면서 사람구경도 하고. 좋잖아?’ 라고. 근데..



이제는 면허를 따고 싶다. 멋드러진 세단은 꿈도 안꾼다. 낡고 주행거리도 많고 덜덜거리더라도 내킬 때 어디든 븅~ 떠날 수 있는, 그 ‘가능성’자체가 부러워져서.


‘당신에게’의 주인공아저씨처럼 장인정신이 깃든 캠핑카가 탐나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무리겠지?




당신에게

저자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출판사
샘터(샘터사) | 2013-06-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사별한 아내가 띄운 마지막 편지, 그 유서가 보관된 아내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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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 번역이란 얼마나 힘든 일일까를 느낀다. 당신에게, 라.. 확실히 아나따니, 아나타니? 아무튼 그 뜻이긴한데 어감이 참 다르네. 결국 그 나라의 언어를 모른 채 번역본만 읽으면 100%를 느낄 수는 없는 걸지도 모르지. 일본어도 쓰고 읽는 건 서툴지만, 이 책의 제목만큼은 작가의 언어로 알아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야기를 다 읽고나니 그 본래의 제목이 더할나위없이 다정하고, 애틋하고, 슬프고 그렇네.


처음 줄거리만 보고는 뭔가 확 와닿지 않았다. 중년의 교도관 – 이랑은 조금 다르지만 아무튼 – 이 죽은 아내의 편지에 의해 그녀의 고향으로 여행하는 이야기라니… 분위기는 알겠는데, 결혼을 안해서인지 부부라는 공동체에 대한 존경심? 경애심? 그런게 없어서인지 이게 과연 애절하게 와닿을 수 있을까싶어 몇 일동안을 책 표지만 뚫어져라 쳐다보다 미루고 미뤘던 이야기.


오늘 아침에 눈을 딱 뜨고 뒹굴거리다가 침대에 누운 채로 봤는데 그렇고 그런 멜랑꼴리라고 치부하며 얕잡아 본 마음이 미안해지네.


작가는 9장에 걸쳐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일단 그 구조가 독특하다. 지금껏 읽었던 장편중에 이런 구조는 처음인듯. 특히 1장은 꽤 많은 분량이고 전혀 관계없는 듯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열되어 있어서 누군가의 단편소설집을 읽는 기분이다. 중간에 다시 한 번 표지에 ‘장편소설’이라고 써있는걸 확인해봤을 정도로. 역시나 예상대로 그 단편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가 ‘당신에게’라는 장편소설의 등장인물들. 별것아닌 것같은 이 등장순서와 이야기구조가 나는 꽤, 마음에 든다.


평생을 수동적으로 살아 온, 말수도 적고 표정의 변화도 거의 없는, 왠지 무뚝뚝한 우리아빠를 떠올리게 하는 주인공. 교도소에서 수감자들에게 목공예를 가르치는 지도원. 그리고 주인공과는 상반되는 쾌활하고 맑은, 그리고 연약한 아내.


나도 나이가 들어가는 건지 요즘은 드라마에 나오는, 그 알콩달콩하고 티격태격하다가 확 불타오르고 난리법석을 떠는 커플들보다 이런 부부, 아주 오랜시간동안 조금씩 서로에게 스며들었을 모습이 그대로 보이는 커플의 모습이 더 좋아보인다. 어느 여름 날의 어둑어둑해질 초저녁무렵, 다정하게 손을 잡고 편의점에 가는 그 묘사가 슬프면서도 너무 아름답게 그려져서 샘이 날 정도였으니.


그런 가슴 아릿한 두 사람의 시간들을 몇 장면 그리다보니, 처음엔 슬플까? 애절할까? 공감할 수 있을까?싶었던 내가 읽던 책을 엎고서 그 부부처럼 천정을 보고 누워서 울어버렸다.


아내를 잃는 순간, 어쩌면 주인공은 지금까지의 일상을 잃어버린 걸지도 모른다. 그걸 예견한 아내는 그런 편지를 쓴걸지도. 유언집행위원회? 예치우편? 익숙하지 않은 장치들이 다소 있었지만, 그리고 설정자체가 흔하디 흔한 설정이었지만 이후 진행되는 이야기는 역시나 방랑벽을 마구 자극한다. 자극적이지 않게, 화려하지 않게, 조심스레 읽는 사람의 마음 옆에 다가오는 작가의 이야기방식도 왠지 다정하게 느껴져서 좋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게 만든다기보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게, 뭔가 변하고 싶게 만드는 이야기. 사표를 맡기면서도 결정을 미루던 주인공이 이제는 그 태풍속에 맨발로 섰던 것처럼.


사진을 받아든 그 남자는, 앞으로 어떤 결정을 내릴까? 주인공의 남은 이야기는 대충이나마 보이는데, 그 남자의 남은 이야기는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어 계속 궁금해진다. 그 미소는 무슨 의미였을까..


“그것도 좋겠지, 풀은 피었다.” 인가…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출연진이 썩 화려하다. 원작을 봐버렸으니 보는 재미가 덜 할수도 있지만.. 찾을 수만 있다면 보고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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