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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고싶은 웰메이드 옛날드라마

옛날 드라마와 요즘 드라마의 기준점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 10년 정도 전에 방영되었다면 옛날 드라마인가? 요즘 트렌드와 다르다면 옛날 드라마인가? 도통 모르겠다. 그저 최근 워낙 표절논란이 생기는 드라마가 많길래 '예전에도 이랬던가'싶어서 한 편 한 편 떠올려 본 추억 속의 드라마들. 모아놓고 보니 러브스토리가 아닌 무언가, 조금 더 깊숙하고 진한, '연인'의 이야기가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가 많길래 모아본다.


표절드라마에 대해 논하자면 끝이 없겠으나, 분명 '풀하우스'라던가 '궁', '내이름은 김삼순' 등 내가 기억하는 수많은 드라마들은 이야기의 일부분만, 설정의 일부분만 차용하더라도 원작과 원작의 저자를 분명히 밝혔다. 그게 당연한 건데.. 요즘, 특히 올 해에 방영되고 있는 표절논란 드라마들을 보면 참으로 화가 나고 안타깝다. 글쓰는 사람들마저도 이렇게 갑질을 하는구나 싶어서.




서울의 달 (1994)
MBC | 토,일 20시 00분 | 1994-01-08 ~ 1994-10-16 종료
총 82부작 정인(연출) | 김운경(극본) 한석규, 채시라, 최민식, 이대근, 나문희


말그대로 다시 보고싶은 드라마. 왜냐면, 기억이 나질 않아서. 당시에도 지금까지도 아주 유명한 웰메이드 드라마의 대표주자임에도, 본 기억이 없다. 우리집은 도대체 이 시기에 이 유명한 드라마를 안보고 뭘했나 싶을만큼 궁금하다. 동영상사이트를 한 번 뒤져본 적이 있는데 찾을 수가 없었다. 


성공을 위해 상경한 청춘의 거칠고 투박한 이야기, 라고 알고 있는데 그걸 쓴 사람이 김운경 작가님이고 그걸 보여주는 사람이 한석규와 최민식이라는 것만으로 무조건 보고 싶은 드라마.







내가 사는 이유 (1997)
MBC | 수,목 21시 50분 | 1997-05-07 ~ 1997-10-09 종료
대한민국 | 총 44부작 박종(연출) | 노희경(극본) 손창민, 이영애, 김호진, 김현주, 고두심


술집 작부라는 말, 요즘은 쓰지 않겠지? 보통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을 호스티스라고 칭하는 것같던데 그 단어로는 이 드라마의 그녀들을 표현할 수가 없다. 이런 걸 시대상을 담아냈다고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지.. 어쩌면 지금도 깊숙한 골목 어딘가에는 '그녀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70년대의 마포, 그 곳에 있는 술집을 배경으로 그녀들과 그 곳에 모여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살아가는 이야기.


40대 아이엄마가 된 지금도 여신의 모습을 한 이영애. 우아함의 대명사가 된 그녀의,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뽀글뽀글 파마를 한 이영애의 대사톤은 변함없이 좋더라. 고두심 선생님은 이제 연극만 하시는 걸까? 드라마에서도 영화에서도 뵙기가 힘들어서 아쉽다.







꼭지 (2000)
KBS2 | 토,일 19시 50분 | 2000-03-25 ~ 2000-09-10 종료
대한민국 | 총 50부작
정성효(연출) | 이경희(극본)
김희정 (송꼭지 역), 조민기 (송준태 역), 이종원 (송현태 역), 원빈 (송명태 역), 이요원 (허지혜 역)


이런 시점의 드라마가 우리나라에 또 있었던가? 꼬꼬마 조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 형제의 이야기.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토닥거리며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 다정하고 정다운 분위기의 말그대로 휴먼드라마. 이상한 건, 그토록 놀라운 설정과 훈훈한 줄거리를 가진 주인공들의 이야기보다 다방 마담으로 등장했던 박지영의 모습이 더 또렷하게 기억난다는 점. 어릴 때였지만 내가 알던 그녀의 이미지와 전혀 다른 모습이라 인상적으로 남았다.







종합병원 시즌1 (1994)
MBC | 1994-04-17 ~ 1996-03-03 종료
대한민국 | 총 92부작
이주환(연출) 외 1명 | 최완규(극본) 김지수, 전도연, 이재룡, 신은경, 김서라


미드나 일드만큼은 장르와 분야가 다양하지는 않더라도, 사극과 함께 의학드라마만큼은 그래도 꾸준히 제작되는 편이다. 그리고 기억하기로 그 시작은 '종합병원'이었다. 오렌지족, 신세대라는 단어의 주인공이었던 신은경을 필두로 당시의 쟁쟁한 배우들이 총출동해서 의사가운을 입는다.




정확한 시청률은 모르겠으나 기록될만한 인기였던 건 분명했던지라 시즌2도 제작, 호평을 받았다. 김정은의 삭발투혼(김정은 삭발은 해바라기였다)과 독특한 코믹연기, 차태현과의 멋진 케미로도 오랫동안 회자되기도. 찾다보니 유연석도 나왔더라.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김남길을 발견했을 때만큼이나 깜짝 놀람.







아파트 (1995)
MBC | 토,일 19시 55분 | 1995-10-21 ~ 1995-04-21 종료
대한민국 | 총 54부작
이진석(연출) | 최성실(극본) 최진실, 채시라, 변우민, 원미경, 정한용


95년, 꼬꼬마였던 내가 그 작은 머리로 나름 '세련된' 드라마라고 챙겨 본 드라마. 아마 분당의 신도시공사가 마무리되고 입주가 시작되던 시기. 대한민국의 하늘이 아파트숲에 가려지기 시작한 시기에 방영된 드라마.


쭉 주택에서만 살아온 지라 '아파트'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당시에는 그저 멋있다며 보다 세월이 지나 잊고 있다가 정작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 '왜 다들 이런 성냥갑같은 곳에서 살아야 하나'같은 사춘기의 공상을 할 무렵 이 드라마가 다시 떠올랐다. 지금은 '네모의 꿈'이라는 노래도 생각난다. 판에 찍어낸 듯 똑같이 네모반듯한 아파트, 똑같은 구조의 층층건물에 살고 있지만, 제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상과 인생. 기억하기로 시트콤처럼 코믹한 장면이 많았다. 특히 오지명 선생님!




젊은이의 양지 (1995)
KBS2 | 토,일 19시 55분 | 1995-05-06 ~ 1995-11-12 종료
대한민국 | 총 56부작
전산(연출) | 조소혜(극본) 이종원 (박인범 역), 박상민 (박인호 역), 하희라 (임차희 역), 배용준 (하석주 역), 전도연 (임종희 역)


지금은 불가능한 캐스팅. 게다가 미니시리즈도 아니고 9시 뉴스 전에 주로 중장년층이 본다는 저녁드라마. 온가족이 모여 보는 주말드라마.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명작드라마. 요즘 이 시간대에 방영하는 드라마들은 대부분 아침드라마와 함께 막장의 향연이 펼쳐지더라. 무조건 자극적인 대사와 설정들. 왜 그래야 하는걸까? 그렇게 해야 사람들이 본다고, 그렇게 해야 시청률이 오른다는 핑계는 이 드라마를 보면 말할 수 없을텐데.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의 정서가 달라진건지,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의 수준이 달라진건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카이스트 (1999)
SBS | 1999-01-24 ~ 2000-10-08 종료
대한민국 | 총 81부작
신윤섭(연출) | 송지나(극본) 외 2명 이민우 (이민재 역), 김정현 (김정태 역), 이은주 (구지원 역), 채림 (박채영 역), 강성연 (민경진 역)


한국의 '오렌지데이즈'라고 하기에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지만,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캠퍼스 드라마라는 점만으로 기억할만한 드라마. '광끼'도 대학생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캠퍼스드라마였지만 카이스트의 학구적인 면에서의 동경심때문인지 이 드라마가 더 먼저 생각난다. 줄거리는 가물가물한데, 이은주가 정말 예뻤다는 것과 연구실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이 많았다는 건 기억나네.


왜 요즘은 파릇한 대학생들의 이야기가 없는걸까 생각해보니, 청춘이어야 할 그들에게서 취업과 스펙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현실이 너무나도 메말라서 드라마로도 만들 수 없는걸까. 어쩌면 감히 그 현실을 애써 포장해낼 자신이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네 멋대로 해라 (2002)
MBC | 수,목 21시 55분 | 2002-07-03 ~ 2002-09-05 종료
대한민국 | 총 20부작
박성수(연출) | 인정옥(극본) 양동근 (고복수 역), 이나영 (전경 역), 이동건 (한동진 역), 공효진 (송미래 역), 신구 (고중섭 역)


'**폐인'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게 이 드라마였지 아마? 시청률은 낮았지만 열렬한 매니아층이 생겨났고, 인터넷이 막 활성화되기 시작할 무렵이라 온라인에서 더욱 화제가 되었던. 아직도 '고복수'라는 이름을 들으면 마음이 아프고, 통닭집에서 화가 난 복수에게 엄마가 뱉어낸 한마디를 생각하면 쓰라리다.


'주인공은 무조건 멋져야 한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잘생긴 남자배우의 마스크, 부유한 재벌집 아들이라는 설정이었다.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 어떤 드라마의 남자주인공보다 고복수가 멋지다. 가난하고 찌질한, 이제 곧 세상을 떠날 소매치기임에도.


주인공과 그들의 가족, 이웃, 친구까지 한 명도 빠짐없이 모든 인물들의 설정이 아프고 또 아팠던, 그래서 잊을 수 없는 드라마. 당시만 해도 개성파 배우의 대표주자였던 공효진이 공블리로 승승장구하는 반면 양동근과 이나영이라는, 크리넥스 한 통을 비우게 만들었던 두 주인공의 연기를 보기가 힘들어진 것같아 아쉽다.


아.. 나영언니는 신혼이었지.. 공공재 사유화에 성공한 분이었지.. 그랬지..ㅠ



세기 말을 경험한 사람인지라 그래도 '옛날'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으니 가급적 세기 전, 2000년 이전의 드라마들만 골라내려고 했으나 '꼭지'와 '네 멋대로 해라'만큼은 뺄 수가 없다. '아일랜드'와 '내 이름은 김삼순'도 넣고 싶은데.. 차라리 다음에는 연도별로 줄세워볼까 싶기도 하고.


분명 저 무렵에는 신인이었을, 초짜였을 감독님과 작가님, 배우분들의 이름이 빼곡해서 괜히 흐뭇하다. 그 분들이 아직도 좋은 드라마들을 꾸준히 만들어내고 있다는 게 기쁘고 감사하다.


이런 걸 트렌드라고 해도 될런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 한국드라마는 재벌, 연애, 그리고 ppl을 빼놓고는 만들 수 없는 것만같다. 물론 가끔 사극을 비롯한 예외는 있지만 대부분이 저 세가지 요소를 반드시 포함하고 있던데. 옳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현실적인 이해는 한다. 하지만, 제발 누군가 '배아파 낳은 내 새끼'와도 같은 작품을 베끼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시청률을 위한 막장 드라마까지는 그러려니 하더라도, 장사를 위한 도둑질은 정말이지 참을 수 없이 화가 난다. 면전에 대고 마구마구 욕을 해주고 싶을만큼 분노스럽다. 올 한 해 내 새끼 도둑맞은 원작자님들, 부디 힘내시길.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도둑질한 사람들을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