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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총맞은 남자의 드라마

이런걸 보면 우리나라의 치안이 좋긴 좋은걸까. '총'이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다. 군대에서의 무용담을 들을 때가 아니라면 입에 담을 일도, 관심을 가질 일도 없다. 대한민국은 총기소지가 불법이니까. 요즘들어 군대에서의 총기사고가 빈번히 일어나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래서였을까. 소지섭이 머리에 총맞은 남자를 연기하는 이경희작가의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미국에서 시작한다. 건달에 양아치로 살고있는, 어릴적에 입양된 남자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갓난아기일 때 미국으로 입양되어 부랑자처럼 아시아 관광객들에게 사기치며 살아온 양아치. 이 남자가 총에 맞은 이유조차 초라하고 비참하다. 졸지에 시한부까지 되버린 이 남자는 미련하게도 자신을 버렸을 부모를 찾으려 한국으로 온다. 그리고 만나게 되는, 반짝반짝 화려하게 살고 있는 엄마. 자신의 동생일 남자를 애지중지 금이야 옥이야하며 예쁘고 행복하게 살고있는 엄마. 버려진 아들의 존재조차 모르는 엄마. 자신을 벌레보듯 하는 그 여자가 개밥주듯 끓인 라면을 먹으면서 이 남자는 얼마나 외롭고 아팠을까.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이 남자의 멜로이기에 아직도 가슴이 절절하게 아파오는 거겠지. 드라마는 무조건 해피엔딩이기를 바라는 사람 중 하나임에도, 인정한다. 이경희작가의 엔딩은, 옳았다. 덕분에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생생하게 그 여운이 남아있는 '미안하다 사랑한다'


2004년에 방영된 드라마라 디테일한 내용은 가물가물한데, 제목만 들어도 가슴이 찌릿한 아픔은 여전히 느껴진다. 이후 '이 죽일 놈의 사랑'이나 '차칸남자' 등 이경희작가의 작품은 많이 나왔지만, 이 작품만큼 슬프지는 않더라.




중국인지 대만인지 중화권에서 리메이크도 되었나보다. 역시나 소지섭이 더 멋지고 임수정이 더 예쁘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가슴 저린 엔딩의 10년 후, 2014년 일본에서도 머리에 총맞은 남자의 이야기가 드라마로 방영되었다. 아주 다른 접근방식으로, 아주 흡사한 엔딩으로 또 한 번 내 가슴을 아프게 했던 일본드라마 '보더'



일본도 총기소지는 불법일 것으로 추정되나, 국적을 막론하고 총기소지가 허용되는 유일한 직업, 이 일드의 주인공은 형사다. 살인현장의 주변을 탐색하던 중 뜬금없이, 황당하리만큼 갑자기 머리에 총알이 박혀버리고 마는 남자. 총알은 머리 속을 한 바퀴 돌고는 겨우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장소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이후 남자는 살해당한 이들의 영혼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된다.


대부분의 형사물 일드가 그러하듯 한 회마다 다른 에피소드가 등장하고, 그 이야기들의 전반에 주인공의 사연이 깔린다. 드라마의 마지막 회에 가서야 주인공의 머릿속에 있는 탄환이 어떻게 되는 지를 보여주는데.. 첫 회에서 남자가 총에 맞았던 순간만큼이나 당황스럽다. 결말을 납득하고 받아들이기까지 20초 정도의 멍~한 시간이 필요했던.





'고', '플라이대디' 등으로 아주아주 유명한 재일한국인 소설가 가네시로 가즈키가 극본을 썼다고 기재되어 있는데 이 사람이 소설을 먼저 쓰고 그걸 토대로 극본을 맡은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드라마 대본만 쓴건지는 모르겠다.


'꽃보다 남자'의 루이를 연기한 이후 너무 빵떠서 조금은 의아하게 생각했던 오구리 슌이었으나 이 드라마를 보고 처음 연기 잘하는 배우라고 인식했다. 역시 배우는 좋은 작품에 좋은 역할을 맡아야 진가를 알수있는 듯.




꽤나 어둡고 묵직한 분위기의 드라마이거늘, 배우들은 요렇게 귀엽고 깜찍하게 놀았나보더라. 하루, 라는 예쁜 이름의 여배우를 여기에서 처음 봤는데 법의관 역할을 아주 매력적으로 연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