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TORY

푸른불꽃

내가 너무 늙어버린건가.. 성장소설 안에 어떤 이야기를 집어넣은 듯하긴한데, 별 느낌이 없다. 감흥도 없고. 일드 '유성의 인연'을 보고 버럭하는 연기에 반해버린 니노미야의 대표적인 출연작이라기에 봤는데, 글쎄.. 

 





확실히, 이때의 니노미야도 연기는 일품이다. 대체로 내가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일본배우는, 또 참 괜찮다고 생각하는 일본영화는 인물의 감정도, 작가의 주제도 은은하게, 담담하게, 자연스럽게 배여나오는 쪽이 많은데- 우리나라처럼 찐~한 감정표현이라던가 강한느낌이 아니라-이 배우는 뭐라고 해야하지.. 배우자체의 이미지가 강하긴하지만 기무라타쿠야처럼 배역을 자신에게 흡수시키지도 않고, 오다기리 죠처럼 자신이 배역에 흡수되지도 않는, 그 가운데의 무언가.






 또래보다 조금은 심각한, 우월한, 사이코와 천재에 가까운, 일상에서 자신을 연기할 줄 아는,'그 놈'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버린, 하지만 가족에게 한없이 충실하고 듬직한, 니노미야의 연기는 좋았다.

 





 

 

인간관계, 완벽한 인간관계이지만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진짜' 가 아니라, 조금은 그의 의도대로, 계획대로 만들어진 관계.친구들과는 그냥저냥 대충이랄까, 진심을 보여주지 않는 표면적 교우관계. 그녀와는 '잠꼬대하는 개'로 인해서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지는 관계. 친동생은 아니지만 하루카, 그녀의 여동생에게는 전형적인, 믿음직한 오빠.



스즈키 안이 나와서 처음에 살짝 반가웠다. '스탠드 업'에서는 쿵짝쿵짝 러브모드였는데, 남매라니,ㅋ 보면볼수록 호감가는 스즈키 안. 상상을 초월하는 사랑을, 보호를, 피가 섞이지않은 오빠로부터 받지만,  그 오빠가 자신을 친부를 살해하게되는, 비극적인 운명의 소녀.


하루카를 지키려했던 그의 완벽해 보였던 계획은, 톱니바퀴 하나가 어긋나면서 엉망이 되어버린다.

 


 




-개한테도 상상력은 있어

뭐?

-요전에 말했었잖아. 개한테 사상력은 없다고

마음대로 엿듣지마

-우리집 개가 밤중에 자면서 힘들어 했었어.틀림없이 나쁜꿈을 꿨겠지 잠꼬대도 했었고.

잠꼬대?

-난 개가 아냐 하고.

난 개가 아냐.

 


 

 


 


즉, 이건 상상력의 승부다. 할 수 밖에 없는걸까 할 수 밖에 없다. 

내일부터 죽을때까지 평생 악몽을 꾸게 될지도 모른다.

노리코 집 개처럼 이상한 잠꼬대를 할지도 모른다나는 인간이 아니야 라고 

하지만 세상에는 웃으며 넘길 수 없는 일도 있다.



'히토고로시' 히라가나도 카타카나도 모르는 나지만, 정말 이 단어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자연스레 외웠다. 아리가또,라던가 그런 단어보다 더 자주 나오는 듯한 '살인자'라는 말.

 모든 걸 다 아는 듯한, 위에서 다른사람들을 깔보고 있는듯한 그도 결국은 어린아이일 뿐이라서, 계획했던 일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않았을 때의 방법까지는 몰랐던 거다. 언제나 세상 모든 일에는 절대 계산할 수 없고 예상할 수 없는 변수가 있다는 걸.





 

 그래, 이 표정. 다른 작품에서도 그랬지만 니노미야가 맡는 역할은 거의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해보이고 차분하고 조금은 차가워보이지만, 이렇게 감정이 폭발할 때의 연기를 하는 니노미야를 보고 나는 반했더랬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저렇게 폭발할 때는 조금은 겁먹은, 두려운 모습이 함께 있어서 신선했달까. '역시 어리구나,' 싶었달까.

 





 

 

'그 놈'에 대한 끝없는 증오심, 아이큐가 높은 아이들 특유의 우월감과 자신감, 가족에 대한 책임감... 그런 모든 감정들이 그가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될 때마다, 그가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겨날 때마다, 결국 모든 일이 생각한 것처럼 흘러가지 않게 될 때마다 또 다른 감정으로 바뀐다. 그리고 동시에 이제는 어찌할 수 없는 곳으로 어떻게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가혹하다.


 이런 찝찝한 결말,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 안그래도 답없는 인생, 답답하고 힘들고 괴롭고 슬픈 일 투성이인데, 내가 왜 영화에서 조차, 소설에서 조차 이런 걸 느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한다. 결국 우리는 작가와 감독과 배우와 스텝들이 만들어내는 그 이야기들 속에서 뭔가 잘될 꺼라는 뭔가 즐거운, 행복한 인생을 보고 대리만족을 원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너무 현실적이고 너무 심오했던, 아무래도 뒷 맛이 씁쓸한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