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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왓에버웍스 Whatever Works

돈많은 부자나라 스위스에는 자살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단다. 더이상 이룰것이 없어서, 그 권태로움을 이기지 못해서 그렇다는데. 물론, 하루하루가 치열한 우리가 보기에는 너무나도 배부른 소리. 뭔가의 경계를 넘어간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쉽사리 하는 걸지도 모른다. 돈이 넘치게 많아서 일수도, 지식이 지나치게 높아서 일수도 있지. 아니면 단순히, 어리석은 걸수도 있고.


영화 왓에버웍스의 할아버지는, 지식이 병이었다. 본래도 신경과민일테지만 뛰어난 물리학자이니 만큼 만물의 이치가 다 보이고나니, 어차피 죽어 없어진다는 그 물리학적이고 운명적인 사실을 납득할 수가 없었던거다. 나같은 사람도 아주 가끔은 '어차피 죽을텐데 하루하루 죽음에 가까워지는건데 왜 이렇게 고군분투하며 살아야하나' 싶을 때가 있거든.

 

 


이 할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 물리학자냐하면, 우리가 화면너머 저 편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조차 알고있다. 그게 물리학과 관계가 있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놀랍고 특별한 사람임에는 틀림없다는 것. 우디앨런은 그런 주인공을 통해서 우리에게 뭘 말해주고 싶어하는걸까? 한 때는 모든걸 가졌었지만 지금은 가족도, 직업도 없이 재미삼아 탁상공론을 하는 할아버지를 놓고.

 

 




처음엔 이 아가씨, 멜로디의 등장에 '뭐하자는건가..나이를 극복한 멜로를 보여주려는겐가?'했다. 그리고 어느정도는 그 예감이 들어맞았지. 멜로디, 이 얼마나 예쁜 이름이냐고. 그 이름답게 음악처럼 발랄하고 천진난만한 아이. 세상 모든걸 다 알아버리고는 그 세상과 동떨어져 살고싶어하는 할아버지와는 정반대. 당연히 두 사람은 끌린다. 처음에야 황당하더라도 원래 다 그런거지. 날 순수하게 좋아해주는 누군가와 계속 마주치다보면 정이 들고 그러다보면 나도 덩달아 상대가 좋아지고. 그 상대가 나와 다르면 다를수록 사랑에 빠질 확률은 커진다. 이 두 사람처럼.

 

멜로디덕분에 할아버지도 어느새 변해간다. 조금은 살아갈 이유를 찾았달까. 어쩌면 잘난척하며 동네아저씨들과 이유없는 열띤토론을 벌이던 그 때에도 할아버지는 외로워했던걸지도. 아리스토텔레스 할아버지가 말했듯, 삶이 허무한 사람도, 치열한 사람도 결국은 사회적동물일 수밖에 없으니.  이 할아버지가 제 아무리 세상에 정이 떨어졌더라도 끝까지 혼자로 남는다는 건 불가능한 이야기.

 




 

난 또 천진난만 멜로디가 시니컬한 할아버지에게 살맛나는 세상을 느끼게 해주며 끝나는 스토리인가했다. 적어도 멜로디의 엄마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랬거든. 아니, 아마 멜로디의 엄마가 등장하지 않았더라도 결말은 마찬가지였겠지. 그리고 그 결말조차 할아버지는 알고있었을꺼다. 물리학자라서가 아니라, 그걸 예감할 정도의 인생은 살았으니까. 연륜이라는게 그런거 아니겠어? 


알고있었지만 그 예감이 현실로 닥쳤을 때의 표정은 참, 아프더라. 보고있는 내가 대신 멜로디에게 '야 이 나쁜 것아, 이럴거면 왜 그랬어!'하고 뺨이라도 한 대때려주고 싶을만큼. 그리고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기위한 두번째시도를 하고, 두번째실패를 한다. 지지리 복도 없는건지, 천운이 돕는건지 참..

 





 


만약 멜로디를 만나지 않고 이 여자를 먼저 만났더라면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래도 할아버지는 사랑이라는걸 하고, 세상과 연결될 실마리를 만들었을까? 왠지 그렇지 않았을 것같다. 그렇다고 멜로디의 대단함을 말하자는건 아니고, 자신과 모든게 정반대인 그 아이를 만났기때문에 조금이나마 할아버지의 외로움과 시니컬함이 희석된 건 아닐까해서. 


그에 비해 이 여자분은 왠지 할아버지와 공통점이 많을 것같잖아. 할아버지는 행복해졌고, 멜로디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고, 멜로디의 엄마와 아빠는 진정한 삶을 찾았다. 처음엔 분명 엉망진창이었던 상황의 사람들이었는데, 그들 모두 어찌저찌하다보니 가장 행복한 인생을 살아간다.


만약 할아버지가 끝끝내 자기고집을 접지않고 건물계단에서 구걸하는 그 아이를 내쳤다면, 멜로디가 만약 두근거리는 마음을 숨기며 할아버지의 옆을 지키기만 했다면, 그녀의 엄마도 아빠도 서로 자신을 숨겨가며 형태뿐인 결혼생활을 계속했다면. 그랬다면 해피엔딩이 되지 못했을꺼라고 우디앨런은 말하고 싶은거겠지. 





본능이 이끄는대로, 뭐든 되는대로, 그러면 모두 잘 돌아갈꺼라는 상당히 희망에 젖은 뻔한 메세지. 그리고 그 메세지가 썩 기분좋게 받아들여지는 스토리와 주인공들. 나는 멜로디의 엄마처럼 파격적으로 바뀌지는 못하겠지만 아주 가끔이라도 마음가는대로 하면서 살고싶다. 최소한 침대에 눕는 순간 생각나는 김치넣은 신라면을, 망설임없이! 먹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쉽지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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