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거리는 다리의 추억, 흔들거리는 다리에서의 사건, 흔들거리는 기억. 나에 대한, 그에 대한, 우리에 대한, 그 사건에 대한 거짓과 진실.
유레루 ゆれる-흔들리다, 진동하다 혹은 동요하다, 갈팡질팡하다.
대부분의 영화들은-아무리 좋은영화라도- 영화 속의 중요한 대사 몇 줄이면 대충 파악이 된다. 물론, 유레루라는 이 영화도 마지막 타케루의 몇 마디를 적으면 내용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만, 이 영화는 직접 봐야한다. 관객의 눈으로, 그들의 눈을, 직접 마주해야 한다. 영화의 주제파악이라던가, 감상이라던가, 그런 문제가 아니다. 타케루와 미노루와 치에의 그 눈을 봐야만한다.
처음, 이 영화를 발견하고 막 다운받았을 때만 해도 나는 오다기리가 주인공인 로드무비쯤 된다고 짐작했었다. '빅 리버'같은. 일단 오다기리가 출연하는 거라면, 시덥잖은 영화는 아니겠지. 하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이건.. 시덥잖기는 커녕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이건, 영화라기보다는 심리학 서적이다. 간단하지만 복잡하고 보일듯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실, 분량은 오다기리의 분량이 훠~얼씬 많지만, 비중은 미노루가, 그러니까 카가와 상이 훨씬 무겁다. 단순히 '불쌍한 사람'으로만 볼 수도 있지만... 그 배우의 눈을 보면, 표정을 보면, 무서워졌다. 어쩌면 이 사건은 시골동네주유소 지킴이로서 살아온 착한 장남에게 생애 최초의 일탈, 뭔가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이기도 하지 않았을까? 물론 不信의 상처가 훨씬 컸겠지만. 그 불신을 알고있었기에, 더욱 더. 오다기리 죠의 엄청난 카리스마를, 지긋~이 누르는 카가와 테루유키의 장악력은 생각보다 대단한 무언가가 있었다.
어차피 시시한 미노루의 인생과 그 시시한 인생으로부터 도망치기만 하는 타케루의 인생. 그 둘의 인생에 치에가 아주 조금, 겹쳤다. 아주 잠깐, 겹쳤다. 그래서 그 둘의 인생은 아주 많이, 변했다. 아주 아주 많이..
치에는 오래 전부터 타케루를 사랑했다고 믿고있겠지만, 글쎄, 그건 사랑이 아니다. 동경..? 단지 멋져보여서, 단지 멀어보여서, 따라잡고 싶었을 뿐이겠지. 타케루 앞에서 솔직하지 못했고, 언제나 무리하고 있었다. 그 다리위에서 도망치지 않았다면, 언젠가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타케루가 아니라, 미노루다. 왜냐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줄 수 있었고 그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이니까. 결국 치에가 죽은 건 타케루를 향한 무의미한 허욕탓이다.
이런 일이 없었다면, 미노루는 끝까지, 영원히, 단 한번도 이렇게 소리질러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평생 그렇게 억지로 웃어가며 살아가야했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최악의 상황이지만. 미노루에게는 너무나 불공평한 최악의 시나리오, 이지만 어쩌면 다행이라고, 그렇게라도 위로해주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하면구도. 자꾸만.. 창에 비치는 쪽에 눈이 가는. 두 인물의 표정이, 마주보는 두 사람의 시선이 자꾸만 보고있게 만드는. -갑자기 우행시가 보고싶구나..-
카가와 테루유키, 오다기리 죠. 이 두 배우가, 이 한 편의 영화로 나에게 알려주었다. 이런 게 연기라고, 이런 게 인생이라고, 이런 게 인간의 실체라고. 아직도 정리가 다 되지 않는 많은 것들을. 결국 우리는 모든 것에 흔들리는 불완전한 존재인거다.
2분 20초부터 나오는 음악이 정말이지 좋아서 한동안 주구장창 들었었다. 제목도 연주자도 전혀 몰라 아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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