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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츠레가 우울증에 걸려서 ツレがうつになりまして。

내가 바퀴벌레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아니, 어쩌면 바퀴벌레보다도 못한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느꼈었다. 단 한 사람에게서, 또는 그 소수의 몇 사람에게서 그런 뉘앙스의 말을 들었을 뿐인데도 마치 세상 모두가 나에게 넌 세상에 필요없는 존재라고 말하는 것같았다. 없는 것이 더 좋은, 그런 존재.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을까?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또는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서, 그게 자주이든 어쩌다 가끔이든 적어도 한 번쯤은 ‘내 존재의 필요성’을 가지고 이런저런 결론을 내려버릴 때가 있겠지. 이 영화 ‘츠레가우울증에걸려서’는 그런 시기를 겪었던, 그리고 겪고있는 남편과 그 아내의 이야기다.


 



한가로운 주택가에 위치한 고풍스럽고 수수한, 그래서 정겨운 집에서 이구아나 한 마리와 함께 살고있는 젋은 부부. 남편은 컴퓨터회사의 고객센터같은 곳에서 일하는 평범한 회사원, 아내는 취미삼아 만화를 그리며 만화가인지, 서툴지만 전업주부인지 미묘한 생활을 하며 소소하게 지내고 있다.


특별할 것은 없지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무난한 행복이란 게 아마 이 부부의 모습이 아닐까.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에 멈춰있는 아내의 일러스트가 영화 중간중간 등장하는데, 그 그림까지도 귀엽지만 평범해서 ‘아, 이런 식으로 성격이 나오는걸까?’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란 걸, 난 언제 알았을까? “사람들이 말하는 평범이라는 건, 사실 알고보면 특별한 건데 말이지”라던 누군가의 말에 격하게 공감했었고, 그래서 비록 영화지만 – 왠지 이 영화 실화일 것같은 강한 느낌이 드는데? – 주인공 부부가 참 부럽고, 예뻐보이고, 덕분에 외로워지기도 했지.



차분하고, 내성적이고, 꼼꼼한 성격의 사람들은 속앓이가 심하다. 츠레라는 이름의 남편도 역시나 그런 사람. 요일별로 도시락에 넣을 치즈를 준비해두고 요일별로 넥타이도 정해두고. 자기이름의 한자가 틀리면 견디질 못하는. 심지어 퇴직서를 낼 때도 한 자 한 자 간격이 다르면 새로 쓰는, 그런 사람이다.


감정을 폭발시키지도 못하고, 폭발은 커녕 내색도 못하고, 속 편히 잊어버리지도 못하는 사람이 우울증에 걸리는 건 당연한 걸지도. 그 병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이 남자가 아내도 없이, 이구도 없이 혼자였을 때 우울증에 걸렸다면 진작에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을지도 모를 일이지. 다행히 그는 혼자가 아니었지만 지금도 어딘가에는…



날 위해서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들어주고, 나에게 용기를 내라며 손을 맞잡아 주고, 어떻게하면 위기에 처한 날 도와줄 수 있을까 고민해주는, 죽고싶어지는 그 순간에 날 붙잡아 줄 사람이 옆에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반대로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가족, 친구, 애인 또는 반려동물.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모두가 그런 존재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모든 가족이, 모든 친구가 하루가 츠레에게 했듯이, 츠레가 하루에게 했듯이, 그런 식으로 함께 해주지는 않는다.


이 영화가 마냥 주구장창 우울증에 걸린 남편의 증상들과 그런 남편을 보며 가슴아파하는 아내의 이야기만 보여줬다면 중간도 가기 전에 꺼버렸겠지. 감동실화라며 가끔 TV나 영화로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본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바로 외면하는 편인지라.


분명 츠레는 우울증에 걸렸다. 하루는 그런 츠레를 보며 가슴 아파했다. 하지만, 우울증이라고 진단을 받았을 때도, 하나씩 하나씩 증상이 나타났을 때도, 우울함과 동시에 편안함이 함께 보여서 좋았다.


너무 무거운 분위기로 가지 않으려는 감독의 의도도 있었겠지만, ‘누구나 겪는 일이잖아?’라고 모두가 알고 있는듯한 느낌. ‘어떤 밤도 개이지 않는 밤은 없다’라는 그 말처럼.





문제가 된 사건이 한 번에 팟!하고 해결되는 개운함은 없지만, 츠레의 우울증을 계기로 하루에게도, 츠레에게도 더 나은 내일이 찾아오는 과정을 차근차근 담백하게 보여주는 게 오히려 좋았다.


혼자라면 견뎌낼 수 없지만 누군가와 함께라면 괜찮아지겠지. 뭐, 그런 말을 나한테 하는 것 같았다. 요즘들어 부쩍 저녁마다 약주드시고 전화해서는 “그래도 니 옆에 계속 함께 있어줄 사람 하나는 있어야지..”하며 걱정인지 투정인지 알 수없는 말을 횡설수설하시는 아빠생각도 나고.


장황하게 이런 말 저런 말 늘어놨지만 ‘츠레가우울증에걸려서‘라는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쯤 나에게 남은 감정은 결국 부러움과 외로움뿐, 감독님의 감동적인 메세지는 머리에서만 맴돌뿐. 아, 사랑이 하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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