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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전도 前度

공항에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담백하다고 해야할지 씁쓸하다고 해야할지 달콤하다고 해야할지 곤란해진다. 그래도 분명 꼭두새벽부터 부랴부랴 리뷰를 쓰겠다고 달려들어 노트북앞에 앉아있는 내 모습을 보아하니.. 꽤나 마음에 들었다는 말이겠지.

 

 나와 취향이 비슷한 누군가라면 다른 그 어떤 영화보다도 이 영화를 먼저보라고 강추할테다.  

 

워낙 기대없이, 정보없이 본 영화였기 때문일까? 여기저기 광고해댔던 로맨틱코미디장르의 한국영화들보다, 또 한 편의 전설이 된 시리즈물 트와일라잇 브레이킹던보다도 훠~얼씬 만족스러움. 아,흐뭇해.

 





왼 쪽의 여성이 뒷좌석남자의 현재 애인, 오른쪽의 여성이 옛 애인이다. 그리고 분명히 이 영화는 오른쪽여성의 시점에서 저 남자를 비롯한 지나온 사랑들을 되뇌인다. 질척이지 않게, 청승맞지 않게. 담담하지만 조금은 그리울정도로만. 그리고 주인공뿐만 아니라 그녀의 옛애인과 그의 현재애인의 스토리도 놓치지 않았고.

 

은근 배려깊은 인물설정과 스토리전개인데다 꽤나 리얼해서 오히려 독립영화의 냄새가 나기도. 이 부분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들은 정말 싫어할듯하다. 박진감넘치는 이야기도, 눈물콧물 잔뜩 흘러나오는 감동신파도 아니다. 그저 한 여자의 일기장과 사진 몇 장을 이어붙인듯한 영상이랄까. 내가 좋아하는 류의.. 싫어하는 사람들은 질절머리를 치는..그런.

 



 

 


 

옛애인이 지금의 여자친구와 동거하는 아파트. 그들의 옆 방에 얹혀살게 되는 그녀. 상황이 불가피했다고는 하지만 주인공을 이해할 수없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부러웠던걸지도.

 

사랑할만큼 사랑하고, 미워할만큼 미워하고, 그랬다면 쿨하게 어떤 모습이든 보여줄 수있다고 생각은 한다. 하지만 난, 그런 적이 없단말이지. 헤어지면 끝. 미워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이'가 '절친한 이'로 바뀌는걸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응, 얼굴에 철판깔고 그들의 집에 신세지는 저 여자는 확실히 부럽다.

 

 

하지만 그 집에 들어간건 분명히 그녀의 계산착오.

 





그 남자의 취향이 그대로 묻어나는 저 작은 방에서 그녀는 끊임없이 옛 추억에 빠진다. 두 사람이 함께 살던 집, 좋았던 일들, 끔찍했던 일들 마구 뒤섞인 회상에 빠졌다가 그 방에서 빠져나올때면 마주치는거다. 현실의 그 남자와. 역시 '사랑했던 이'는 '절친한 이'가 될 수없나보다. 그냥 가볍게 사귄 사람들말고, 정말 사랑한 사람이라면.  

 

그녀는 결국 현재의 그와 옛날의 그를 혼동하게 된걸지도 모른다. 

 





  


옛 생각에 빠져들던 그녀는 자연스레 지금까지 사랑했던 남자들을 하나 둘 떠올린다. 그 회상장면 중에서 특히 이 부분이 예뻤다. "헤어졌어요" 한 마디에 손잡아버리는. 그리고는 카피하는. 아, 달다.. 

 

내친김에 고백하자면 베드신이나 키스신보다도 두 남녀가 조심스레 처음 손을 잡게 되는 순간이 화면에 잡히면 가슴이 쿵쾅쿵쾅하고 뺨이 화끈화끈거린다. 주책맞게 말이지. 그런 장면이 잘 살았던 영화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최고였는데 이 영화에서의 처음 손잡는 장면은 조제와 또 다른 맛(?)이 있어서 역시나 두근두근..  

 



 


기억이라는 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예쁜 색으로 덧칠이 되는가보다. 추억이 주는 달콤함에 넘어가버린걸까. 혼란스러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그녀, 그리고 옛 남자.  

 

어떤 면에서는 주인공인 여자보다도 저 몹쓸 남자의 현재 여자친구의 입장에 더 몰입이 된다. 불쌍하다거나 그런 기분이 아니라, 왠지 나라도..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 뻔히 알면서도 그녀를 받아들일 수밖엔 없었을 것같거든.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심리에 몰입할 수있었다는 게 내가 느낀 이 영화의 묘미. 신기했다. 

 

 

 


 

여주인공의 마음을, 그리고 저 남자의 씁쓸한 기분을 제대로 느끼게 해줬던 귀걸이. 유치한만큼 보기 드문 디자인, 추억어린 사랑의 증표라고 할만한 물건. 헤어지고서도 언제나 그녀의 귀에 걸려있던 저 물건이 떨어져나간 순간, 불안하고 아쉽지만 홀가분했다. 반면, 잊고있던 저 귀걸이를 하수구에서 꺼내 집어든 남자는 말할 수없이 아팠겠지.

 

 





전도前度 (EX2010)가 좋은 또 하나의 이유, BGM이 하나같이 훌륭하다. 예고영상에 흐르는 곡보다 중간중간 삽입된 곡들이 더 좋은데.. 동영상이 짤려버려서..ㅠㅠ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는 연인들을 주변에서 꽤 많이 봐왔다. 그토록 서로 피곤해하고, 피곤하게 만들면서 뭐하러 만나는걸까싶었는데. 그들의 말로는 많이 싸웠던만큼 더 잊을 수없는 거라고 했다. 정말 그런걸지도. 서로 최악이다싶을 만한 모습들까지 다 보여줘버린 상대라면, 언제든 인생의 핀치가 왔을 때, 감정의 핀치가 왔을 때 어쩔 수없이 생각이 나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 상대와 서로 할퀴어가며 끝까지 함께 할 자신이 없다면.. 과감하고 깨끗하게 도려낼 필요도 있지않을까? 달큰한 영상 속에 배어나왔던 메세지.

 

영화와는 별 상관없는 여담을 늘어놓자면, 여주인공은 얼핏 후카츠 에리와 닮았고 몹쓸 옛 애인은 각도를 잘 잡았을 때 주원과 닮았더라.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