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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사랑한다 사랑하지않는다

두 번 보게된 이 영화. 처음 봤을 때는.. 자꾸만 옛 남자친구와 겹쳐서 엔딩크레딧 올라가자마자 극장을 뛰쳐나와 급히 소주집을 찾았다. 분명 엔딩은 비극이 아닌데도 - 그렇다고 해피엔딩도 아니지만 - 급 우울해지는 그 기분을 주체할 수가 없었거든. 영화의 남자주인공은 분명, 그 때 그 사람과 참 닮아있었다.

 

답답했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그 남자. 영화 속 대사처럼 "참 나이스한 사람"인건 분명한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를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 어쩌면 그래서 더 끌리는지도 모르지만. 내 과거사는 제껴두고,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고있자면 내내 답답하기만 하다. 재미있는 영화가 되려면 뭔가 사건이 있어야하는데 이 영화에서 사건은 없다. 상황만 있다. 바람난 와이프와 그 옆의 남자. 두 사람에게 닥친 그 상황만. 그래서 극장에서 이 영화를 처음 봤던 그 날은 이래저래 답답함반, 애틋한 옛생각반으로 그 맑은술을 홀짝홀짝거렸지.

 

그리고 한 달쯤 지나 우연찮게 이 영화를 다시 봤다. 사실은 그 찝찝한 감상이 되살아날까봐 꺼렸지만, 부득이하게 다시 본 '사랑한다,사랑하지않는다'는, 역시나 슬펐지만 의외로 달콤하기도했다.


 

 



그 우울한 상황에서 두 사람은 종종 현실을 잊는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두사람이 함께했던 과거를 이야기하고, 두 사람이 함께할 미래를 이야기한다. 그러다 현실을 깨닫고는 긴 정적. 몇 번이나 그런 순간들이 반복되는데, 그 중에서도 비가 들이친 창가에서 이야기하는 장면과 그 곳에서의 대사가 가슴을 푹 찔렀다. "이제 익숙해질때도 됐는데.." 그 한마디에 눈물이 뚝,하고 흘렀다.



등장인물의 감정에 초점을 맞춰 만든 영화들은 대부분 대사가 적다. 하지만 그 적은 대사에는 백마디 말로도 다 못할 많은 것들이 응집되곤하는데, 역시나 이 영화도 그랬다. 배우가 무심코 툭 내뱉는 그 몇마디의 대사가 들리기 시작하니 처음봤을 때보다 훨씬 몰입하며 두 사람의 이야기에 빠질 수 있었다.


참으로 나이스하고 센서티브한 이 남자는 바람난 와이프가 집나가겠다고 짐싸고 있는 와중에 비오는 하늘을 보며 예약한 레스토랑에 갈 수 있을지를 걱정한다. 그녀가 좋아했던 그 레스토랑에, 마지막으로 갈 수 있을지를. 내 과거사가 떠올려 흘끔흘끔 봤을 때는 정말이지 진절머리가 떨어졌다. 연신 마음속으로 '붙잡으라고! 말을 하라고!'라며 짜증섞인 강요를 스크린으로 보내고 있었다. 저 남자가 왜 저리도 그 레스토랑에 가고자했는지는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던거다. 그리고 저 남자의 그 한마디를 귀기울여 듣지 못했던거다. "그래도.. 그칠지도 모르잖아.." 어쩌면 언제 그칠지 모르는 비처럼, 그녀의 마음도 변할지 모른다고 믿고 싶었던건 아닐까.

 

 

 



남자들이 보면 이 여자, 뻔뻔하다고 느끼려나? 나는, 너무나도 깊이 공감했는데. 극장에서 봤던 처음 그 때는 말이지. 그런데 다시보니 이 여자도 답답한 건 마찬가지다. 돌이켜생각해보니 그렇다. 상대방이 어떤 캐릭터인지 알고있다면, 내가 먼저 말하면 되는거잖아. 그런데 끝내, 그 한마디를 하지 못한다. 잡아달라는 그 한마디. 어찌보면 한숨 푹푹 나오는 저 남자주인공보다도 훨씬, 답답한 인물. 결국, 과거의 내가 그랬다는 소리다. 왜 그 한마디를 하지 못했을까. 바보같이.

 



 



 

같은 자리에 나란히 서있던 두 사람이 갈라진다. 한 사람은 윗 층으로, 한 사람은 아랫층으로. 그리고 잠깐, 두 사람이 한 곳에 선다. 같은 자리이지만 다른 층의 그 곳. 다른 층이지만 같은 자리인 그 곳에서 두 사람은 머뭇거린다. 정말 짧았던 그 찰나의 순간이 이 영화의 백미였다.





 




헤어지는 사람들은 욕하고 쥐어뜯으며 험악해지거나, 눈물을 주륵주륵 흘려가며 신파극을 찍어야만한다는 고정관념이 내 머릿속 어딘가에 있었나보다. 그래서 두 사람이 준비하는 이별의 모습이 생소하다고, 답답하다고 느꼈었나보다. 다시보니 느껴진다. 두 사람의 조마조마한 그 마음이, "혹시나"하고 서로의 말 한마디를 바라는 미련이, 깊숙이 와닿는다. 


이 두사람이 끝끝내 어떤 결말을 맞았을지는 모르겠다. 궂은 날씨와 신경질쟁이 새끼고양이덕에 자연스레 다시함께가 되었을지, 여자도 남자도 쉽지만 어려운 그 한마디를 내뱉지못해 이별하게 되었을지, 알수없다. 참 뻔한 관객인 나로서는 비가 그치고 눈부신 햇살이 비치던 그 주방에서, 그 거실에서, 그 집 어딘가에서 두 사람이 말없이 맛있는커피를 마시고 있었으면 한다. 헤어지자고도, 헤어지지 말자고도 말하지 못했던 나와 그 사람과는 다른 결말을 이 두사람은 찾았으면 좋겠다. 누군가 한 사람이 "사랑한다"고, 말해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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