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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신보다 인상적인 욕조씬

영화를 보다보면 눈에 익은, 왠지 익숙한 장면들이 나오곤한다. 예를 들자면 오늘의 주제, 욕조씬의 경우가 그렇다. 영화도 결국 사람이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니 먹고,자고,웃고,울고 하는 장면들이 겹치는건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특히나 주인공이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함께 몸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의 유대감이 깊어질 때, 또는 사건의 발단이 되는 장치가 필요할 때. 욕조씬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기 마련이다. 워낙 멜로영화나 잔잔한 휴먼드라마 류를 좋아하는지라 그런 장르의 영화들에 등장했던 욕조씬들만 모아봤다.



여주인공들의 욕조씬

 


아메리칸뷰티


아마도 가장 유명한 욕조씬. 명작 아메리칸뷰티의 장미목욕씬. 언제봐도 자극적이고, 매혹적이다. 저 곳에서 아이컨택을 한 후, 남자는 사랑해선 안될 저 여자아이에게 반해버린다. 이 영화를 두고 비도덕적인 미국의 현재를 보여주는 명작이라고 평가하던데. 저런 사랑도, 충분히 있을 수 있지않을까생각했다.

 

물론 충격적이긴하지만 그래도.. 남녀사이의 사랑이라는게 이런저런 관계를 다 따지고나서 빠져드는건 아니잖아. 이 영화에서는 그 순수한 사랑이 아니라 딸의 친구가 그 아버지를 유혹하는 색기어린 장면으로 만들어버리긴했지만.

 





 


엘리자베스타운


엘리자베스타운의 두 남녀주인공의 그 길고긴 밤샘통화. 아직 연애를 시작하기도 전의 그 두근두근한 시기에 밤새도록 좋아하는 사람과 실컷 떠들고는 동이 트기도 전에 서둘러 나가서 만나본 경험, 누구나 한번쯤은 있지않을까?

 

저 미끈미끈한 비눗물에 풍덩 빠트리기라도 하면 휴대폰은 맛이 갈텐데도, 분명 휴대폰이 뜨끈뜨끈해졌을텐데도, 마냥 웃으면서 좀처럼 끊을 수 없는 그 전화. 또 다시 사랑에 빠져서 저토록 설레이는 밤샘통화를 하게된다면... 나는 그냥 안 씻고 말련다. 참 달콤해보이기는 하는데, 현실적으로 너무 위험천만한 짓인걸.

 





 


 

냉정과열정사이


저 장면에서 분명 아오이는 쥰세이를 생각하고 있었겠지. 굳이 잊으려 잡아든 책일테지만 그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올리가 없다. 이 날, 아오이는 쥰세이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이전의 만남에서 보여준 자신의 행동에 사과하며, 잘지내라며, 너무 담백해서 오히려 미련이 뚝뚝 흐르던 그 편지. 하지만 곧, 미수다의 그녀를 생각나게 하는 오두방정 친구의 등장으로 아오이는 옛추억에 빠졌던 욕조에서 나와 현실속으로 돌아간다.

 







 

소친친


정신없던 하루의 끝, 엉망이 되었던 집청소를 마치고 완~전 편하게 릴랙스하고 욕조에서 라디오를 듣던 그녀는 몇 초후 눈을 땡그랗게 뜨고 뛰쳐나가게 된다. 첫사랑의 추억을 뺏아간 왕짜증나는 그 남자가 라디오너머에서 그 레코드를 틀어버렸던것. 저렇게 편안하고 예쁜 표정으로 비누칠하던 여주인공이 DJ의 그 화딱질나는 놈이라는 사실을 알아챘을 때의 표정, 정말 압권이었는데.


진혜림, 냉정과열정사이에서 아오이를 연기할 때와 참 달라서 놀랬다. 같은 욕조씬인데도 확실히 다른 느낌, 다른 장치. 신기해.








 


 

백만엔과 고충녀


눈을 땡그랗게 뜬 아오이유우는 역시나, 샤방샤방 깜찍하구나. 원제는 백만엔걸스즈코인데 번역된 우리나라제목도 꽤 영화의 내용을 잘 담아낸 것같다. 지지리도 운이 없는 여주인공은 뜻하지않게 전과자가 되고 이후 떠돌아다니며 단기알바를 한다. 그리고 백만엔이 모이면 그 곳을 떠난다.

 

그 여정중 여름의 해수욕장을 거쳐 복숭아과수원이 많은 산골마을로 들어오게 되는데, 이 장면은 그 곳에서의 첫날. 일을 도와주며 숙식제공을 받는 할머님댁의 욕조. 동그랗고 깊은 욕조속에서, 저 초록색 따땃한 물속에서 여독을 좀 푸나싶었지만 순진해서 더 무서운 주인집 노총각아드님 덕택에 깜짝 놀라버린다. 저 욕조, 특이해서 참 탐났었는데.

 

 






때론 남주인공의 욕조씬도



인간실격


크.. 공허한 저 눈빛. 요즘 잉여질, 이라는 씁쓸한 유행어가 많이 보이던데. 인간실격의 주인공이 한창 그 잉여질에 빠져있었을 때. 어김없이 진창 술을 퍼마시고 다음 날 아침에는 저런 표정으로 욕조속에 들어앉아 있었다. 분명 '나는 왜 태어났을까?'라던가 '인간의 일생이란 왜 이다지도 허무한가' 쯤 되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리라.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의 욕조씬

 

 


스윗 리틀 라이즈


제목 그대로 부부인 두 사람의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

 

이 부부는 참 이상하다. 결혼을 안해봐서 실제로도 그런 부부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남편은 게임기가 있는 작은 방에 들어가서는 문까지 걸어잠그고 게임에 열중한다.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방문 바로 앞의 식탁에 앉아 휴대폰으로 남편을 부른다. 그만큼, 서로의 공간을 지켜준다고 봐야하는걸까. 남편이 아내를 안을 때도 와락! 안아주는게 아니라 팔에 아내가 닿지않게, 거리를 지킨다. 러브모드 충만해서 눈꼴시려운 영화도 참 보기 힘들지만, 미묘하게 어색한 부부의 모습을 보는 것도 참 못할 짓이더라.

 

자연스레(?) 두 부부는 남편이 아닌 남자와, 아내가 아닌 여자와 또 다른 사랑을 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불륜의 시작과 함께 부부는 오히려 조금씩 가까워진다. 이해할 수 없어야하는데 왜인지 납득이 되는.

 

그런 묘~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의 마지막이 가까워질 때쯤 두 사람이 한 욕조에 있고 하늘에서 장미꽃잎이 떨어진다. 빨간꽃잎하나, 하얀꽃잎하나. 부부가 되려면 필요하다는 그 흰 색 장미와 붉은 장미 꽃잎이 떨어지는 장면을 보면서, 이 영화의 감독은 참, 잔머리를 잘 굴리는구나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감독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나나


유명한 만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나나. 총 두 편이 만들어졌는데 그 중 먼저 만들어진, 미야자키 아오이가 하치를 맡았던 영화가 훨~씬 낫다. 물론 원작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어쨌든. 그 첫번째 영화에서 저 두사람, 밴드를 하는 나나와 그녀의 남자 렌의 욕조씬이 두번 등장한다. 한번은 옛날 회상씬으로 두 사람이 함께 살던, 눈이 많이 오는 그 곳의 작은 고양이발 욕조안. 또 한번은 다시 만난 두 사람이 렌이 묵고있던 초호화 호텔의 운동장만한 욕조안. 다른 곳, 다른 시간이지만 렌은 변함없이 나나에게 비누칠을 해주고.

 

이 영화에서도 그렇지만, 괜히 어색한 베드신보다는 함께 욕조에 들어가있는 연인의 모습을 보여주는게 두사람의 육체적, 정신적 관계가 얼만큼 깊은가를 더 잘 표현해주는 것같다. 하룻밤 일치르고 같은 침대에서 눈뜨는 두 사람의 모습보다는, 작은 욕조안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두 사람이 훨씬 예뻐보이고 사랑에 빠진 것처럼 보이잖아?

 





 

 


 

글루미선데이


두 남자, 아니 세 남자, 아니아니 세상 모든 남자의 사랑을 독차지할만큼 매력적인 여자주인공. 사실 캐릭터자체는 그닥 끌리는 뭔가가 없다고 보는데.. 순전히 캐스팅을 잘한거다. 몇 년이 지나서 다시 봐도 여전히 분위기있고, 고혹적이고 아름다운.


그 완벽한 여신이 그녀의 돈많은 애인, 자보와 함께 욕조에 있는 장면. 자보는 참으로 민망한 엉덩이를 보여주시며 술상까지 들고는 저 욕조 속으로 들어가신다. 욕실도 예쁘고 욕조도 예쁘고 두 사람이 함께 샴페인을 마시는 장면도 참 아름다웠는데, 두 사람의 행복한 순간은 저 욕조에서의 그 짧은 시간이 마지막이었다.

 





 

 


 

도쿄타워


표면적으로 보면 그저그런, 세상에 널린 불륜이야기이지만. 좀 더 깊숙히 들여다보면 결국 상처받기를 거부하는 여자, 그 중에서도 끓어넘치는 정열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30대 유부녀들을 보여주는 영화 도쿄타워.

 

원작을 뛰어넘는 영화, 드라마는 존재하지않는다고 생각하는 나이지만, 이 영화와 냉정과열정사이는 조금 달랐다. 원작을 뛰어넘는 놀라움과 감동은 아니었지만 소설과는 또 다른 여운을 느낄수 있었거든.

 

 도쿄타워의 두 여주인공 중에서 나는 이 여자. 순진하고 평범한 주부의 껍데기 속에 엄청난 아우라를 갖고있는 키미코가 좋았다. 악마라고 불릴만큼 섬뜩했던 이 욕조씬과 플라멩고씬을 보고 반했고, 마지막의 그 어린아이같은 표정으로 눈물을 참으며 돌아서는 장면을 보고 홀렸었다.

 

 






 

러브앤드럭스


외국영화를 보다가 신기했던 것, 참 많지만 그 중에서도 거실에 세면대가 있고 욕조가 있는 저런 경우. 하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의 그 드넓은 원룸은 양변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오픈된 공간에 있었으니. 욕실이나 거실이나 같은 공간일 수밖에 없긴했네.


거실이었다가 침실이었다가 욕실이 되기도 하는 그 공간의 욕조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 그리고 아이컨택. 쯧! 너무 달달하잖아. 새하얀 비누거품을 후~날리지 않더라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않은 맨몸이 아니더라도, 새빨간 장미꽃잎으로 뒤덮이지 않더라도, 충분히 달콤한 연인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구나했다. 아니, 오히려 저 모습이 훨씬 애틋하고 예쁘다. 배아프게시리...

 






가끔은 세 사람이 되기도

 

 



몽상가들


언제나 궁금했던 것 하나. 아리따운 여주인공과 두 명의 남자. 그 세 명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함께 사랑한다는, 그 얼토당토 않은 설정은 글루미선데이가 시초였던걸까? 아니면 까마득히 오래전부터 있어왔던걸까? 그토록 눈부신 미모를 가지고 태어나지 못해서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않는단말이지. 글루미선데이도 좋아하고, 이 영화 몽상가들도 좋아하지만 그들의 관계만큼은 이해도 못하겠고 납득도 할 수 없다. 아니, 하기싫다. 그 관계가 평범한 거라면 한 명도 없는 내가, 너무 불쌍하잖아. 뭐, 그냥 그렇다고.

 

위에서도 말했지만 난 잔머리를 잘 굴리는 감독을 좋아한다. 영화의 줄거리나 캐릭터의 감정선과는 별도로, 뭔가 귀여운 영화 속 장치들을 발견하면 '와우'를 외치면서 그 기발함에, 때로는 섬뜩함에 그 장치를 만들었을 감독에게 반해버리곤 하는데 몽상가들에서는 저 욕조씬이 그랬다. 비누거품 속에 마주앉아 클랩튼이니 베트남전쟁이니 영화니 하는 온갖 이야기들로 설전을 벌이며 제대로 잉여짓을 하고 있는 두 남자. 그리고 그 사이에 들어와 앉는 아리따운 여주인공. 그 순간 비치는 거울 속의 세사람. 정말이지 '와우'.

 



욕조에서 털어놓는 엄마의 이야기



달팽이식당


창피한 엄마, 싫어하는, 미워하는 엄마. 소중한 딸, 사랑하는 딸, 하지만 솔직하게 다가설 수 없는 딸. 달팽이식당의 두 모녀는 어색한 사이였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솔직하고 화통한 엄마가 딸에게만큼은 있는그대로의 사실과 감정을 보여주지 못해서 쌓인 오해들 때문에. 그 어색한 두 사람이 조금씩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데, 이 욕조에서 엄마의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그 이해가 시작된다. 밉기만한 엄마가 병에 걸렸다는, 그 비극적인 이야기를 참으로 당당하고 쿨하게 딸에게 말해주던 순간부터.

 






한 욕조에서 친구가 되기 시작하는 두 여주인공

 


사랑의순간


여자들의 우정을 이야기하는 영화중 가장 리얼하게 나왔다고 생각하는 영화, 사랑의 순간. 여자들 우정이 얄팍하다고하는 남자들의 그 말, 100%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분명 어떤 각도에서 바라본다면 참으로 얄팍하다.

 

하지만 '친구'에 나오는 그런 남자들의 우정과는 또 다른 끈끈함이 있는데, 그 설명하기 힘든 관계를 이 영화는 잡아낸 것같다. 키이라 나이틀리와 시에나 밀러가 연기하는 두 인물들을 통해서.

 

내 남자의 옛 여자. 옛 남자의 부인. 불편할 수밖에 없는 관계의 두 여자는 친구가 되었다가, 질투에 빠졌다가, 연민에 빠졌다가, 적이 되었다가, 그 모든 일들을 다 겪은 뒤에야 진짜 친구가 된다. 영화가 끝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 과정의 시작이 바로 저 장면이었다. 어릴적 자매들끼리 그러듯, 한 욕조에서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부터.

 





영화의 사건을 만드는 욕조



왓 위민 원트


우리의 마초남, 남주인공이 스타킹신고 립스틱바르고 핫젤로 제모하고 생쑈를 하다가 두둥~ 사건발생. 켜진 드라이어를 잡은 채로 미끄덩! 감전되버린다. 그리고 주인공에게 감사하고도 곤란한 능력이 생겨나면서 영화의 본격적인 스토리가 전개. 기고만장한 마초남에게 여자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이라는 재미난 발상의 영화 왓 위민 원트에서 아주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욕조. 이 영화말고도 욕조에 헤어드라이기를 빠트려서 주인공이 감전되는 영화들이 몇 편 더 있었는데 도통 기억이 나질않는다.

 

처음에는 이런 말랑말랑 분위기의 영화들 외에도 액션, 스릴러, 판타지 등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서 욕조가 등장하는 장면을 찾아볼까했는데, 잠깐 생각하고는 그만뒀다. 일단 그런 장르의 영화에서는 욕조가 등장하는 장면이 많지도 않을뿐더러 스릴러같은 경우는.. 욕조에 물받아 놓고 손목긋는 장면이 확 떠올라서.

 

거 왜 히치콕영화중에도.. 뭐더라.. 싸이코? 엄청 유명한 장면이 떠오르잖아. 욕조에서 샤워하다가 꺄악!하며 스크림표정짓는 그 장면. 굳이 그런 섬뜩한 장면들을 캡쳐까지 해가며 다시 보고싶지는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