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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종로의 간판들

시간이 나면 무작정 버스든 지하철이든 타고 나가 찰칵거리기 바빴던 때가 있었다. 뚜렷한 목적지없이, 그냥 '오늘은 이 동네를 가볼까?'하고는 어슬렁거리다가 사진도 찍고,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그러다 저녁때쯤 그 동네 근처의 누군가를 만나기도 하고.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팔자좋았던 시절. 그 때 의미없이 찍었던 사진들이 꽤 많았는데 다 어디로 사라진걸까.


메모리카드랑 클라우드 뒤적여보니 그래도 몇 장 남아있었는데, 그 중에서 종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찍었던 사진 중에 유독 간판이랄까 현판이랄까 그런 것들이 많길래 모아본다.




누군가 유명한 자개공예명인의 전시회가 있다며 엄마가 날더러 대신가서 보고 작품사진집이라도 있으면 사서 보내달라고 했던 날이다. 큰 기대없이 갔다가 반짝거리는 작품들 보며 감탄하고 운좋게 작가님(?)의 싸인도 사진집에 받았다. 그 장소가 이 신문사의 미술관이었다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참으로 유감스럽지만.







느껴지는가. 장인의 자긍심이. 이 사진, 기억으로는 건물안까지 들어가서 찍었다. 아마 2층..아니었나 싶네. 분명 아직도 그 솜씨와 가치를 아는 사람들은 꼬부랑말의 외국명품보다 이런 장인들의 양복점에서 맞춤옷을 입으리라. 사실 서울에도 다른 지방에도 구석구석에 남아있는 양복점을 꽤 많이 본 편인데, 그 중에서 가장 당당한 느낌의 양복점이었다. 아무래도 종로 한복판에 있는 곳이니, 알만하지. 내가 조금 더 빨리 돈을 벌기 시작했다면, 그리고 이 곳의 존재를 조금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우리 아빠에게도 이런 멋진 곳에서 양복 한 벌을 맞춰드렸을텐데. 아쉽다.







건물자체가 예뻐서 멀리서부터 눈여겨 보며 오다가 저 문을 보고 홀딱 반함. 들어가서 섬유공예작품 구경할 생각을 왜 못했을까. 


가구든 건물이든 뭐든 목재, 그것도 손 때 탄듯한 나무를 보면 정신을 못차리는 병이 있다. 그래서 이 문을 보고 한동안 멍하니 보고 있었고, 요즘 완전 핫한 경리단의 골목에서도 어느 주택의 현관이 딱 이렇게 생긴 나무문을 보고 사랑에 빠졌었다. 정말이지 훔쳐오고 싶을정도로 매력적이었는데..







언뜻 보이는 까만색 간판이 딱 봐도 내 취향이라 후다닥 뛰어가 철판을 밀어내버림. 지금은 문을 닫아버린, 아니지. 이게 벌써 몇 년전 사진이니 어쩌면 지금은 건물자체가 사라져버렸을지도 모르는 어느 이발관의 간판.






팩토리. 막 실내공사가 끝날 무렵인 것 같았다. 아마도 옷가게가 아니었을까?






mk2. 모르겠다. 이 사진을 찍을 때도 몰랐고 지금도 모르겠다. 음.. 인테리어숍?







디어 프라이팬. 역시나 모르겠지만 아마도 음식점이거나 또는 주방용품 판매점으로 추정. 워낙 멋대로 돌아다녀서 이 가게들의 위치를 정확히 떠올릴 수 없음이 매우 아쉽다.







르 쁘띠 프린스. 사실 어린왕자라는 이름보다도 유리문을 사이에 둔 아기와 아빠(아마도)의 모습이 너무 예뻐서.







할머님이 문 밖을 서성이시던 빙그레식품. 예나 지금이나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종로통. 분명 10년은 족히 넘도록 저 자리에 고대로 있었을 가게. 사실 그럴싸하고 멋드러지게 꾸며놓은 새 간판이 달린 건물들보다 이런 곳이 더 마음을 잡는다. 






빙그레식품 옆에 있던, 역시나 특색있는 차양이랄까 간판이랄까를 달고 있던 나무 한 그루. 오호라 여기서 주소가 밝혀지는구나.






예술을 파는 구멍가게. 프로젝트샵. 작은 입구와 작은 간판이 깜찍.






이건 현판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류가헌이라는 그 이름도, 담에 그려진? 찍혀진? 그림도 예쁨. 쓸데없이 보정은 왜해서 사진을 망쳤을꼬.






비를 긋다. 센스터지는 네이밍. 왠지 맑은 날보다는 비오는 날에 가보고 싶던 곳. 아직도 있을런지는 모름.


다 3년? 4년? 오래전에 찍은 사진들이라 그립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그렇네. 시간이 되면 날 잡아서 여기저기 간판만 찍으러 돌아다녀 봐야겠다. 모아서 보니 꽤 재밌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