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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세계대전, 유대인들의 전쟁영화

우중충한 날씨탓인지 몇 일째 축 처진 기분으로 궁상을 떨고있다. 이런 기분일 때는 신나는 뮤지컬영화나 달달한 로맨틱코메디를 봐야하거늘, 난 왜 이 쓸쓸하고 가슴아픈 영화, 피아니스트를 또 다시 봐버린걸까.

 

 

피아니스트



 아주 오래 전 처음 비디오방에서 커피며 과자며 왕창 사들고 이 영화를 골라잡았을 때, 난 당연히 음악영화이겠거니했었다. 물랑루즈처럼 신나고 화려하거나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할아버지들이 들려주던 재즈처럼 흔들흔들할만한 음악들이 쉴새없이 흐를 줄 알았다. 그래, 그 때 난 참 무식했다. 결국, 그 때 사들고 들어갔던 과자들과 커피는 거의 그대로 다시 들고 나와야만 했다. 찝찌름한 기분과 함께.


 


 오스카시상식에서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단다. "흑인, 유대인, 게이가 없었다면 오스카도 없었을 것이다."라고. 그 말 그대로, 2차세계대전 당시 유태인들의 상처받은 역사에 대한 영화는 참 많다.


그런 영화들을 '홀로코스트 영화'라고도 하는데, 홀로코스트란 바로 히틀러에 의해 자행되었던 유대인대학살을 의미하고, 무려 12년간 진행되었다. 

 

 

 

 

너무나도 어린, 아이들의 이야기가 더 슬픈 영화들 

 


인생은 아름다워



미치도록 실력있는 배우들과 미치도록 영리한 감독이 미쳤었던 역사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보여줬던 인생은 아름다워. 그래, 정말이지 역사가 미쳤었던거다. 아니, 결국 사람이 미쳤던건가. 히틀러라는 한 사람으로 인해 죽은 사람들, 고통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 지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유난히도 사랑스러운 행복을 만끽하던 이 세사람의 가정이 다른 시절에 살았더라면 참, 좋았을텐데. 물론 그랬다면 영화의 소재가 되지 못했을테지만.

 




 

 

전형적인 한국의 아버지상을 둔 딸자식으로서, 나도 모르게 저 소년이 부러웠다. 저토록 불쌍한 운명의 아이를 부러워한다니 벌받을 소리이겠지만 어떻게든 아들에게 상처주지 않으려 고군분투하는 그 아버지, 생의 끝까지 밝게 웃는 모습을 보여줬던 그 아버지를 보여주는 로베르토 베니니와, 일부러 말썽을 부려도, 애써 애교를 부려봐도 별반 다르지않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시던 우리 아빠를 자꾸만 비교했었다. 철없게도..

 

 

작가와 감독은 어찌해야 이 슬픈 역사를 가장 가슴찢어질만큼 아프게 보여줄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다큐처럼 있는 그대로만 보더라도 말할 수없이 비참한 유대인들의 역사이지만 그걸 더 확실히, 가장 아프게. 그 중에서도 정말이지 잔인한 설정이다했던건 로베르토가 연기한 캐릭터의 설정보다도, 너무 사랑스러운 아역의 캐스팅보다도, 바로 엔딩의 그 시점이었다.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독일소년과 유대인소년의, 순수해서 아팠던 우정을 그린 영화 파자마를 입은 소년.  이 영화의 설정도 인생은 아름다워만큼이나 잔인하다. 평범한 독일소년과 유대인소년의 우정도 충분히 안타까웠을 당시의 상황인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나치최고 장교의 아들과 아우슈비츠에서 학살될 운명의 유대인소년의 만남이라니.

 

하긴, 어떤 장소와 어떤 캐릭터를 설정하더라도..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영화는 슬플 수밖엔 없겠지. 이 영화를 보며 문득, 그 잔혹했던 일제시대, 우리나라의 어린 누군가와 일본의 어린 누군가에게도 우정이 싹 텄던 순간은 있었을까하는 생각도 해봤다. 만약 있었다면 이 영화에서처럼 쓰라렸으리라.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힘겹게 살아남았던 유대인들의 후손들은 경제분야, 문화분야 등에서 세계적으로 그 뛰어남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난 유대인이 싫고, 우리민족은 그들보다 월등하다'며 히틀러의 후손임을 마치 자랑하는듯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라스 폰 트리에처럼.


그런 사고방식이 그들의 말처럼 우월하다는 피에 의한 것인지, 교육에 의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 영화속, 철장을 사이에 둔 두 꼬마를 보고있자면 전부 어른들의 죄라는 생각이 든다.

 

 



 

전시의 겨울


전쟁, 레지스탕스, 학살...유대인소년이 받아들이기엔 너무도 버거웠을 어른들의 지옥. 영화 '전시의 겨울'은 한 유대소년의 정신적인 성장영화, 라고들 한다. 하지만 난 성장이 아니라 고문영화라고 생각했다. 왜 평범한 한 가족이, 아무런 죄도 없는 그 가족들이 그 지경을 겪어야 했던걸까, 왜 서로 적이 되어야만 했던걸까. 아마도 소년은 평생 그러한 것들을 생각하며 살아가게 될텐데.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뽑으라면 단연 이 장면. 새하얀 눈밭을 달리는 마차와 그 마차를 뒤쫓는 나치들. 그 하얀 눈이 만들어내는 시각적효과 탓일까, 순간 머리가 아찔해지고 어질어질한, 눈이 시리고 가슴이 시린 장면.

 

 





 

굿바이 칠드런


담담하고 깨끗한 영화. 그래서 더 가슴이 끓어올랐던 영화 '굿바이 칠드런'. 황제들도 침범할 수 없었던 신성한 공간 수도원이지만 이 곳에서도 유대소년은 안전할 수 없었다. 그 꼬마도둑이 독일군에게 발설하지 않았더라도.. 분명 언젠가 나치의 총구는 그 소년을 찾아 수도원 깊숙한 곳을 헤짚었을테니까.



 

 


 

처음에는 묵묵히, 깔끔하게 그려낸 이야기구나했는데 언젠가 다시 봤을 때는 감정을 꾹꾹 눌러담은 게 느껴졌다. 특유의 건조한 시선이 이 영화의 강점이고 단연 돋보이는 백미.

 

 

 

 

 

한 여성을 통해 보여주는 2차대전 당시, 유대인의고통




 

글루미선데이

 


워낙 유명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내게도 남다른 의미가 있는 영화. 포스터만 보더라도, 그 유명한 음악만 듣더라도 얼마나 gloomy한 영화일지 느껴지기에, 내심 끌리면서도 자꾸만 보는 것을 미뤄었던 글루미선데이. 그렇게 2년 정도를 미루고 미루다 용기내어 맥주 한 병들고 보기 시작했는데..

 

영화의 초반부에서는 배경의 아름다움과 여주인공의 치명적인 매력에 푹 빠졌고,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은 입아프니 생략-중간 즈음에서는 이해할 수없는 관계의 세 사람이 샴페인을 터트리는 모습에 기뻤고,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독일인장교, 아니 그러했던 역사에 치를 떨었다. 결국은 글루미선데이인건가하며 멍~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던 그 때, 그 엔딩.



 


정말 좋아하는 이 영화의 엔딩.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게 아닌가싶어 억울해지기도 하지만, 그 시간만큼 더 통쾌했던 결말. 지금껏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다양한 분위기와 감정곡선을 담고있는 영화.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보더라도 통쾌한 엔딩이 좋은 영화. 언젠가 나도 샴페인을 옆에 두고 이 영화를 보고싶다. 그리고는 마지막 그 순간에 퐁~하고 뚜껑을 딴 후 영화 속 모자와 함께 건배하고 싶다.

 

그러고보니 그녀는 유대인이 아니었구나. 유대인을 사랑해버린 여자..였을뿐인데도 말이지. 나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망쳐놓았던걸까, 그리고 동시에..당시 일본군에 의해 망가진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삶은 얼마나 많았을까.

 




 


블랙북



로맨스, 라는 감정이 깔려서일까? 이 영화는 다른 영화에 비해 꽤나 헐리웃의 냄새가 난다. 다른 영화들은 진정 그 일들을 겪어낸 유대인들이 독백을 하는 느낌이었다면 이 영화는 헐리웃의 영화쟁이들이 캐릭터와, 상황과, 마지막 반전까지 머리짜매고 만들어낸 상업영화라는 느낌.

 

하지만 결코, 나쁘지 않았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족을 모두 잃은 여자. 그러다 여성성을 무기로 한 스파이가 되는 그녀는 결국 적군을 사랑하게 된다. 어디선가 본듯한 낯익은 스토리. 힘겹게 해피엔딩이 되나싶지만 결국은 그렇게 될 수 없었던 당시의 현실. 정말이지 상투적인 이 이야기가 실화라니...

 

 

 

 

그들은 독일인이었다. 하지만...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


블랙북의 그녀는 가족을 모두 나치에 의해 잃은 유대인 여성, 글루미선데이의 그녀는 사랑했던 유대인을 잃은 여성, 모두 유대인학살을 경험한 전쟁의 피해자들. 반면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의 여주인공, 소피는 독일인이다. 가만히 있었더라면, 그저 묵묵히 대학교에서 수업이나 듣고 살아갔다면 그 어떤 상처도 받지않았을 여자.

 

그런데 그녀는, 왜 죽음을 무릅쓰고 그토록 무모한 짓을 했던걸까. 




 

 이 영화 역시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단순히 실제로 있었던 인물만 그려낸 것이 아니라 그녀가 처형당하기까지의 과정, 그 과정 속의 다른 인물들과 재판 내용, 심문 내용 등도 모두 남겨진 자료를 바탕으로 최대한 리얼하게 그려낸 이야기.

 

 2차세계대전이 일어날 무렵, 독일 내에는 백장미단이라는 이름의 히틀러 저항단체가 생겨났는데 소피 숄은 그 중 유일한 여성멤버였고 영화는 그녀가 백장미단에 소속되기 전의 일상과 그 위험한 단체에 들어가게 된 계기, 체포, 심문과정, 처형까지의 과정을 따라가며 소피 숄의 심리에 초점을 맞춘다.

 

이 영화를 보고 놀랐던건, 그러한 독일인이 있었다는 것보다도, 소피 숄의 고뇌와 용기보다도, 저토록 면밀한 심판의 과정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유대인은 정치운동이 발각되는 즉시 총살, 일반 유대인들은 노인이며 어린이며 관계없이 수용소에 몰아넣고 독살시켰으면서..

 

어쨌든 결국 소피 숄은 무죄라는 사실이 입증되었음에도, 처형당했다.

 






 

타인의 삶  






소피 숄의 인생과 심히 비교되는 이 남자의 삶. 영화 '타인의 삶'은 그 색다른 시점만으로도 박수갈채를 받아 마땅하다.

 



 


아래층 그들을 도청하면서 마땅히 정치적(인종적)인 감시를 해야하는 주인공은 점점 그들의 삶에 흡수되어버린다. 결국 그의 삶은 조금씩, 조금씩 지워지는듯한 극의 흐름이, 수용소에서 학살당한 유대인들의 인생만큼이나 비참했다.

 







이 영화의 포스터.. 물론 도청하는 그 모습도 극 전반의 흐름과 캐릭터를 상징하는 좋은 포스터감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이 부분도 여러 장의 포스터 중 한 장쯤있으면 좋았을텐데. 그 엄청났던 지옥의 시간들이 지나고 자신의 인생을 잃어버린 주인공의 모습은 왠지 살아있는 송장을 보는 듯하는 느낌이었다. 물론, 영화를 다 보고나서야 느낄 수 있는 감정일테지만.

 

 



 

 쉰들러리스트 




냉철한 기회주의자인 독일인이 1100명의 유대인을 구해낸다는 이 이야기를.. 스티븐 스필버그가 아닌 다른 감독이 만들었다면, 리암 니슨이 아닌 다른 배우가 연기했다면, 진정 감동을 줄 수 있었을까? 역사상 최고의 명작으로 언제나 손꼽히는 쉰들러리스트이지만 극의 구성이 조금만 바뀌어도, 캐릭터가 살짝만 흔들려도 이 영화, 유대인들의 원성을 살지도 모를 이야기다.

 

왜냐하면, 실제역사의 피해자는 유대인들인데 이 영화의 영웅은 히틀러의 민족, 독일인이었기에. 영화의 시점과 흐름이 조금만 바뀌면 아주 다른 느낌의 영화가 되어버릴수도 있었다. 우리가 일본의 우익영화를 보고 비판하는 것처럼.

 

하지만 다행히도 명감독과 명배우들의 덕택에, 영화는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명작이 되었다.

 

 

 


이 글을 쓰다보니 '쉰들러리스트'의 이야기와 '글루미선데이'에 등장하는 독일장교의 이야기가 겹친다. 독일인임에도 많은 유대인들을 대학살로부터 구해낸 용기있는 사람의 인간미넘치는 이야기. 하지만 한 명은 찢어지는 가슴으로 그들의 손을 움켜잡았고, 한 명은 시꺼먼 속내로 그들의 재산을 움켜잡았구나.  

 

 

2차세계대전, 우리나라도 당시 일본군에 의해 씻을 수없는 상처를 받았지만.. 이런 영화를 볼 때마다, 유대인학살에 관련된 자료들을 볼 때마다 할 말을 잃곤한다.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흐르고 민족우월주의를 내세워 셀수없이 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한 나치의 죄가 명백해졌음에도 아직 "우리 나치는 유대인보다 우월하며 유대인은 모두 사라져야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걸 보면 기가 막힌다. 그런 사람들속에서 살아남은, 살아가고있는 유대인들은 그 마음이 오죽할까. 그 상처가 오죽할까.

 

그래도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유대인의 아픈 역사를 교과서에서, 소설에서, 영화에서, 다큐멘터리에서 보고 가슴아파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간접적이더라도 그러한 것들을 통해 함께 슬퍼하고 아파하고 억울해하며 분노한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아주 조금은.. 위로가 되지않을까?


친일파가 경제, 정치를 지배하고 있는 지금, 이 나라에 살고 있으면서.. 유대인들을 위로하겠다니. 나도 내가 우습네. 씁쓸하다.


+ 이 글을 쓸 때만 해도 이런 사태가 벌어질 줄은 몰랐다. 중동에서는 아직도 끊임없이 민족간의 죽고 죽이는 나날들이 계속되고 있다는 걸 몰랐다.  ..팔레스타인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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