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첫사랑영화

언제는 그렇지않았을까싶지만, 요즘은 부쩍 첫사랑코드가 여기저기 유행인듯. 가장 대표적인 첫사랑몰이의 시작은 영화 '건축학개론'이려나? 정확한 통계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내 짐작으로는 '대한민국 남성이 본 한국멜로영화' 중에서는 단연 1위로 올라섰지싶다. '엽기적인 그녀'의 오랜 아성을 드디어 무너뜨렸달까. 

건축학개론

바람에 휘날리는 찰랑찰랑 긴 머리를 스아~악 귀뒤로 넘기며 전공서적을 한팔에 안고있는 수지는 여자인 내가봐도 예쁘긴했다. 지하철에서 차태현뺨때리던 전지현만큼이나, 빗속에서 우산쓰고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던 손예진만큼이나. 드디어 차세대 첫사랑이미지 여배우가 등장한걸까? 

첫사랑을 떠올리며 나도 뽀얀 화면속으로 빠져들어 회상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절대금단이라는 첫사랑과의 재회를 해버렸기에 내 추억은 집어치우고 또 다른 한국영화 속의 첫사랑으로 씁쓸했던 재회를 지워보기로.

김종욱찾기

이 영화에서 임수정이 인도로 떠난게 그냥 대학때였던가 딱 스무살때였던가. 여튼 인도의 블루시티로 가는 길 우연의 만남이 겹쳐 운명적인 첫사랑이 되버린 이 남자. 현실의 어리벙벙한 탐정(?)과 분위기있는 정체불명의 기억속 남자 두 명 모두 공유가 연기했다. 

당연하게도, 회상씬에 등장하는 잊지못하는 옛사랑 공유의 캐릭터가 더 멋졌지. 콧수염은 뺴고. 멀미하며 비실거리던 것도 빼고. 비주얼과 분위기가.ㅋ

지금에와서 궁금해지는건 만약 이 영화가 여주인공이 아닌 남자주인공의 시점으로 풀렸다면 어땠을까하는 점이다. 우여곡절에 끝에 다다른 그 공항에서, 주인공이 남자였어도 임수정이 맡은 여주인공과 같은 선택을 했을까?

클래식

언제봐도 청순한 손예진이지만 '클래식'에서 가장 예뻐보였지싶다. '내머릿속의 지우개'를 비롯한 모든 영화에서도 예뻤지만 왠지.. 아련하고 맑고 여리여리~ 그래, 딱 만인의 첫사랑느낌.

요즘 저조한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꽤나 비싼값에 해외에 팔렸다는 드라마 '사랑비'를 보면서 '내가 이 스토리를 어디서 봤더라?'했는데 이 영화였군! 하긴.. 이런 이야기도 은근 많지. 

엄마의 첫사랑, 아빠의 첫사랑. 그들의 아들과 딸이 만나서 알콩달콩하다가 좌절고민번뇌하다가 결국은 해피엔딩. 참으로 식상한 스토리였지만 감독님의 능력덕인지 배우들의 능력덕인지 내가 너무 어렸을 때 봐서인지 이 영화는 정말 좋았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 여러명이서 보러갔다가 울며불며 눈물콧물 이 폭포수를 이루는 바람에 한동안 면박당했다는.ㅋ

연애소설

멍하니 사진을 보고있으면 왠지 '잘 지내고 있나요?'라고 묻고싶어지는, 아직도 그리운 이은주. 

'연애소설'에서 차태현의 첫사랑은 과연 누구로 기억되었을런지. 내가 남자라면.. 수인이를 떠올리며 달콤해졌다가 경인이가 떠올라 어느샌가 왈칵, 눈물을 쏟아버릴 것만같다. '조제..'에서의 마지막장면처럼.

ing

'ing'는 여주인공의 인생을 반어적으로 표현한걸까? 아니면 아직도 그녀가 남주인공을 사랑하는 마음이 진행중인걸 표현한걸까? 어느쪽이든, 시큰하다. 주어진 시간이 짧기에 민아의 첫사랑은 영재. 마지막사랑도 영재. 

10년전 영화인데 난 아직도 남자주인공 캐스팅이 못내 아쉽다

키친

그래, 어떻게 첫사랑이 마지막사랑이 될 수 있냐는 말이지. 아니, 많은 사랑을 거쳐서 종착점이 된다면 이해할 수 있을런지도. 하지만 첫사랑=유일한사랑이 되는건 믿을 수 없다. 영화에서라도 그런 설정은 몰입할 수가 없다. '키친'감독님도 내마음이랑 같았던 것이리라.

어릴 때부터 따라다니던 동네오빠와 결혼한 모래. 확실히 그 동네오빠가 여러 면에서 훌륭하긴 하더라.  깈태우라는 배우의 이미지도 그 친숙한 느낌이 잘살고, 설정도 능력있고 꿈도있고 성격도 좋은! 

두레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모래는 분명히 다른 남정네한테 한 번쯤은 눈이 갔을게야. 첫사랑은 절대 영원할 수 없어. 암, 영화에서도 그 정도의 현실감은 지켜줘야지.

와니와준하

블로그를 시작하고서, 이런저런 포스팅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등장시킨 영화가 '와니와준하'일 것같다. 아니면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겠지. 어쩔 수없다. 좋은걸! 이 영화 정말 좋은데! 김희선은 이런 영화를 더 찍어주길 바라는데 왜왜왜! 내눈에 자꾸 이미지관리로 보이는 영화며 드라마만....ㅠㅠ -이후 희선언니는 '참좋은시절'에서의 연기로 내 아쉬움을 달래주었다고 한다-

김희선과 주진모. 두 사람이 연기하는 영화 속 스토리는 어엿한 성인남녀의 현실적인 연애,관계를 그린다. 하지만 이야기의 처음과 마지막에 동화가 한 편 펼쳐지는데 그 동화속의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극중에 주인공들이라는 암시가 걸려있어서. 주진모가 데자뷰를 겪는 장면도 나오고. 

와니의 첫사랑은 금단의사랑? 정도의 치명적인 상처였지만, 준하의 첫사랑은 어른이 된 뒤 다시 만난 그녀이겠구나~하는 100% 확실하지는 않은 방법으로 보여주는 그 장치가 꽤나 예뻤다. 아.. 빨리 쓰고 이거나 다시봐야지.

바이준

세상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고있고, 그만큼 많은 사연의 첫사랑이 있고, 당연히 이런 이야기도 존재한다. 다시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첫사랑. 영화 '바이준'에서의 준이는 방화사고로 죽지만 - 자살이었는지 사고였는지 모르겠다 - 현실에서는 교통사고, 지병, 그리고 자살. 아주아주 다양한 이유로 아주아주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첫사랑을 잃었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예쁜 포스터로 손짓해놓고는, 어린 내마음에 꽤 지독한 우울함을 안겨줬던 영화.

모두가 그렇다고는 못하겠지만.. 내 경우를 봐도, 주변의 다른 여성성을 지닌 사람들을 봐도, 우리는 남자들처럼 첫사랑을 가슴에 품고 종종 떠올리며 그리워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지금 사랑하는 남자가 첫사랑이라고 말하는건 절대 거짓말이 아니거든. 제 아무리 상냥하고 따뜻하게, 예쁘고 소중하게 만났던 첫사랑이라해도 내 옆에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걸로 그만이다.

그런데, 준이는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다. 도기 옆에서도 준이를 못지우던 채영이처럼. 

다시만나 추억이 망가져버리긴했지만, 그래도 어디선가 처음으로 내 마음을 줬던 그 아이가 잘 살아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일지도. 그것만으로도 다행일런지도.

S다이어리

왜인지 보기만해도 해피바이러스가 마구 뿜어져나오는 김선아. 그녀가 주인공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 거들떠도 안봤을꺼다. 솔직히 선아언니의 영화선택은.. 음... 내 취향과는 조금.. 허허.

이 영화에는 김선아의 못되쳐먹은, 마구마구 두드려 북어포처럼 뜯어버리고 싶은 前 남친들이 등장하신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악독하다고 할만한 남정네가 있었으니. 현재는 무려 신부님이고 여주인공이 짝사랑하던 시절에는 신학도였던! 그런데도 속은 시커먼! 그 놈을 이현우가 연기한다.

내 경우는 워낙 예쁘고 소중하게 남겨놨던 첫사랑을 딱 10년뒤에 재회했다가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렸지만, 이 영화 'S다이어리'의 여주인공은 최악의 기억이었던 첫사랑을 다시 만나 복수..랄까 어떻게든 되갚아주면서 속이 후련해진 경우. 실제로 첫사랑한테 안 좋은 기억만 남아있다면 세월이 많이 지나서 다시 만나 쥐어패든 어찌하든 확 풀어버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음, 영화랑은 다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