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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내가 고백을 하면

시작부터 끝까지, 이렇게 반가운 마음이 가득 들었던 영화는 아마 처음인 것같다.


‘힐링캠프’라는 프로그램이 생긴 이후였나? 아니면 그 전부터였던가? ‘힐링’이라는 단어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티비를 틀어도, 잡지를 봐도, 라디오를 들어도 내 입에서도 자꾸만 힐링타령. 예쁘고 포근한 단어지만 그 말이 자꾸 나온다는 건 결국, 나도 다른 사람들도 모두가 치유받길 원할만큼 메마르고 각박하게 살고있나싶어 씁쓸해지기도 한다.




제목에도 시놉에도 대사에도 그 어디에도 힐링이라던가 치유라던가 하는 말은 찾아볼 수 없지만, 이 영화를 보고 ‘이런 게 힐링인가’에서 시작해 ‘아, 좋다..’하며 편안해졌다.


매일같이 딸기향섞인 가짜 딸기아이스크림만 주구장창 먹다가 딱 좋게 익은 딸기를 통째로 갈아만든 생과일쥬스를 마신.. 말하자면 그런 느낌의 내가고백을하면




매일 만나는 사람들은 생사의 문턱을 오가는 환자와 그걸 지켜봐야하는 가족들. 제대로 끝내지도 못하는 지저분하기만 한 연애. 주말마다 서울에서 영화를 보고, 연극을 보고, 책을 읽고. 그렇게 살아가는 강릉여자.


 


 



작은 영화관의 사장, 그리고 흥행못하는 영화감독 겸 제작자. 이 서울토박이 남자는 주말이면 강릉에 내려가 커피를 마시고, 바다를 보고, 맛집을 돌아다닌다.


 


 


그리고 짐작하듯, 서로 똑같은 상황에 놓인 두 사람은 우연히 만나고, 두 사람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강릉의 단골 커피집에서 시작된 인연이 서로의 집으로, 그리고 또 다른 어딘가로.



 

 

조용하게 흐르는 전개 중간중간 마음에 드는 대사들이 많았는데 특히나 이 집에서 남자와 그의 후배가 나누는 대화가 정말.. 구구절절 ‘내 말이 그 말이라니까!’를 외치며 캐릭터에게도 배우에게도 감독님에게도 마구 친밀감이 생겼더랬다. 다른 관계에서도 그렇지만 특히나 연애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취향’이라고 줄곧 생각해왔으니까.


강릉을 배경으로 수많은 맛집들이 등장한다는 남자의 영화도 그렇고, 두 주인공이 만나는 장소가 대부분 강릉인 것도 그렇고 정말 그 라디오의 평론가 말처럼 ‘그저 그런 강릉맛집찬양론인가’ 하며 보다가 장소를 옮겨서라도 버거운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인물들이 정말이지 나같아서 몰입되었고, 리얼(특정감독님들의 적나라해서 과격하게 느껴지는 현실감?)과 로망(현실과 정말이지 매치안되지만 영화이기에 가능한)사이에 자리를 잘 잡아놓은 것같아서 보는 내내 편안했다. 누군가에게는 지루할, 나에게는 반갑게 느껴진 담백한 영화.


그리고 이 영화가 좀 더 ‘재밌다’고 느껴진 몇 가지 이유를 더 말하자면..

(알고보면 재미없어지는 것들이니 요주의)


 


 



중간중간 등장하는 일본영화들. 포스터를 보여주기도 하고, 영화 장면을 보여주기도 하고. 조제, 카모메식당, 도쿄 오아시스, 하츠코이.. 하나같이 보고보고 또 보고 앞으로도 계속 또 볼 영화들. 정말 아끼는 영화들. 그래서 ‘나도 저 두 사람과 취향이 같은건가?’ 했다가 ‘아, 감독님이랑 나랑 취향이 같은건가?’하면서 괜히 또 친한 척을 해보기도.


 


 




조연이라기엔 등장하는 시간이 좀 짧은 것같고, 그렇다고 특별출연이라기엔 비중도 꽤 준 것같고 연기도 깜짝 놀랄만큼 자연스러웠던 안영미. 얼핏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가 다시 응?하며 결국 엔딩크레딧에서 그 이름을 찾아낸 상순씨.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무자비하게 남자 주인공의 영화를 까내린 비평가는 박해일이었다는!


 


 



두 인물에 집중된 이야기라서 딱히 강릉을 예쁘게 보여주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강릉에 가고 싶어진다. 왜? 저 끊임없이 나오는 먹방때문에. 도루묵이 생선이름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는;;


복덕방아저씨같기도, 중매쟁이같기도 한 커피집사장과 두 주인공이 함께 갔던, 그 금게어쩌고를 맛있게 쪽쪽 발라 먹어대던, 그 곳이 제발 실존하는 곳이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가리라, 그리고 먹으리라. 이 영화 속 주인공들같은 만남따위 바라지도 않으니 제발 감독님, 저에게 그 식당정보를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