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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기차타고 춘천으로 첫번째

3월 말, 정말 충동적으로 춘천에 다녀왔다. 서울,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모두 적거나 많거나 연고가 있거나 하다 못해 여행이라도 가봤는데 왜인지 강원도에는 이렇다 할 기억이 없어 언젠가 가봐야지 하다가 '급' 질러버린 것.

 

엄마말로는 애기 때 가족여행을 몇 번이나 다녀왔다는데 늙어버린 내 뇌에는 기억이 없는 관계로, 내게는 강원도를 대표하는 이미지의 춘천으로 무조건 출발! 까지는 좋았는데.. 역시 어느 정도의 정보수집은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1. 시작은 남춘천역

 



 

용산역에서 청춘열차라는 걸 타고 춘천으로 향함. 왜 춘천역이 아니라 남춘천역으로 갔냐면, 이모가 그랬거든. "초행지를 여행할 때는 일단 그 곳의 시장에서 시작해"라고. 주린 배도 저렴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채울 수도 있고, 그 동네 어디가 볼만한 지 시장 아저씨와 아주머니들만큼 친절하게 알려주는 사람들도 없다고. 

 

묘하게 신뢰가 가는 그 말에 춘천의 시장을 검색했더니 풍물시장이 남춘천역 주변에 있더라고. 오로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남춘천역에서 내린 게 실수라면 실수였다.

 

우선 풍물시장은 2일과 7일에만 열린다. 장날이 아니더라도 가게들이 문을 열긴 하는데.. 내가 상상했던 전통시장이 아니라 현대적으로 재구성된? 그 신식느낌나는, 장날 아니면 휑한, 그런 곳이었던 것.

 

그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충격받아 일단 눈에 보이는 이마트에 들어가 아이스커피 쭉쭉 드링킹하면서 고민했다. 일단 왔으니 닭갈비든 막국수든 뭐든 먹고 가야겠다싶어 검색해봤더니 먹을거리는 죄다 춘천역 주변에 있더라고. 그래서 무작정, 걸었다. 남춘천역에서 춘천역을 향해. 

 

 

2. 남춘천역에서 춘천역까지 걸어가다.

 



춘천에서 찍은 첫 사진. 하천을 가로지르는 다리의 양 쪽끝에 있던 조각상. 귀여운 듯 오싹하기도 하고 웃음이 나다가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던. 기대와 다른 풍물시장의 충격때문에 그랬을지도 몰라.







길을 알았다면 중간에 조각공원을 만나 좋은 시간을 보냈을텐데, 빙글뱅글 헤매며 걷다보니 웬 골목길이 나왔다. 모텔, 아니 여관과 여인숙이 가득한 길. 살짝 겁이나서 빠른 걸음으로 걷는데, 이 날 처음으로 기분좋아지게 만들었던 모습. 80년대부터 있었을 듯한 오래된 여관 앞, 화분 잘자라고 하나씩 꽃아준 초록색 영양제. 파릇하게 싹도 나오고 꽃도 핀 화분들. 덕분에 조금은 나아진 기분으로 다시 씩씩하게 걸어감.






이제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이용소. 미용실도, 미장원이나 이발소도 아니고 이용소. 오래된 건 무조건 좋아하는 내게는 정말이지 반가워서 찰칵찰칵. 이 즈음부터 여행하는 기분이 났다. 낯설어서 좋은 느낌. 오래된 건물이 많은 반가운 춘천의 골목들.







지도로 볼 때는 가까워보였는데 생각보다 길었던 춘천역으로의 여정. 눈 앞에는 파출소가 있고, 옆으로는 휑~한 빈 터가 있었다. 과연 끝이 있는걸까, 이 길이 정녕 맞는걸까 의심하며 걸었다. 







정말.. 정보수집은 필요해. 버스라도 탈 걸 그랬다. 지금 생각하면 이 길을 걷던 시간이 가장 아깝고, 아쉽고. 순간순간 짜증이 샘솟았는데, 그 때마다 '그래도 지금 밟고 있는 이 땅이 강원도 땅이다! 강원도에, 춘천에 오긴 왔다!'하며 마인드컨트롤하며 계~속 걸음.





3. 춘천역에서 막국수 먹으러 가는 길

 

마침내 춘천역도착! 역사의 규모자체는 남춘천역이 더 컸다. 오가는 사람도 더 많았고. 춘천역 주변에도 몇몇 닭갈비 식당이며 커피체인이 있긴 했는데 그닥 들어가고 싶은 곳이 없어서 역사 옆에 있는 관광안내소? 그 곳에 물어 닭갈비골목이라는 명동으로 또 다시 걸어 감. 

 

춘천역에서 20분정도만 쭉~ 걸어가면 은행들이 즐비한 사거리가 나오는데 그 때 길만 건너면 명동이 나온다. 옷가게며 커피집, 밥집 그리고 닭갈비집들이 잔뜩 있는 곳.




가는 길에 있었던, 역시나 오래 전부터 있었음직한 병원 건물. 참 예뻤는데 사진을 이따위로 밖에 못 찍었네..;;








감격의 막국수! 남춘천역에 도착한 후 두 시간? 세 시간정도를 방황하며 걷고 또 걸어간 보람을 이 때가 되어서야 느꼈다. 사실 낙원동을 명동인 줄 알고 네 집 정도 보이는 닭갈비 집중에 그냥 마음에 드는 곳으로 골라 들어가서 먹어버린 막국수다. 춘천하면 닭갈비, 닭갈비하면 춘천이니 그걸 먹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혼자 먹을 용기가 안나서 막국수로 대신한건데..

 

오! 이 것은 냉면과도 모밀소바와도 다른 색다른 느낌이여! 이 날이 평일이었고 점심시간대도 아니라서 식당에 손님은 나 하나. 아마도 첫 손님이었을거다. 인증샷을 위하여 찰칵거리고 있었더니 아주머니가 뿌듯뿌듯한 표정으로 조미료 하나도 안 쓰고 육수며 면까지 직접 만드는 거라고 자랑하셨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더 맛있게 먹었다.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면 한가닥 남기지 않고.



4. 강원 드라마 갤러리

 

맛있는 막국수를 배불리 먹고나니 춘천여행의 목적을 달성한 듯한 성취감과 허무함이 동시에 찾아왔다. 배는 빵빵한데 가야할 곳은 모르겠고, 망설이다 아까 그 귀여우신 아주머니께 물었다. 도대체 어딜 가야 '아, 내가 여길 잘 왔구나~ 춘천이 참 좋은 곳이구나~'하며 돌아갈 수 있겠느냐고. 

 

춘천 역 옆의 관광안내소에서 집어 온 지도에서 아주머니가 손가락으로 짚은 곳은.. 모두 하나같이 멀었다. 지치고 배부른 내가 걸어가기엔 도저히 엄두가 안나는 곳들을 제외하고 근거리로 추천받은 곳은 막국수 한 그릇을 위해 걷고 걸었던 그 길을 다시 돌아가면 나오는 강가의 공원들.

 

하아.. 지금 생각해도 한숨이 절로 나오지만 별 수 없어 그 곳으로 목적지 설정. 내 우둔한 머릿 속 내비게이션에 입력했다. 단, 왔던 길 말고 다른 쪽길로!



그렇게 걷다가 화장실이 급해져 무작정 들어갔던 이 건물. 이 사진도 볼 일 다 보고, 이 건물의 실체를 알고나서야 찍었다. 뜻하지 않게 만나서 더 반가웠던 드라마 갤러리 겸 관광안내센터.







이제보니 곰돌이 참 귀엽네. 여기는 큰 건물 두 개로 나눠져 있는데, 한 쪽은 강원도를 배경으로 찍은 드라마와 영화 - 가을연가, 겨울동화, 말죽거리 잔혹사 등 - 를 갤러리형식으로 모아서 관광정보와 함께 볼 수 있고, 다른 한 쪽은 각종 기념품과 공예품을 판매하고 있다. 

 

화장실에서의 용무를 마치고 편안한 마음으로 드라마갤러리 들어가서 구경하다가 관광책자 몇가지 챙겨서 나왔다.

 



 


이건 같은 건물 1층에 있는 식당. 다음에 엄마랑 꼭 한 번 와보고 싶은 곳. 




5. 춘천의 풍물시장



이 날.. 풍물시장 골목만 세 번을 지났다. 남춘천역에서 춘천역으로 갈 때 한 번, 막국수먹고 조각공원과 mbc전망대 가는 길에 한 번, 그리고 다시 남춘천역으로 돌아갈 때 까지. 이 날이 장날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ㅠ






막 춘천에 도착한 나를 적잖이 당황하게 만들었던 평일 풍물시장의 모습. 다시봐도 쓸쓸해.







그래도 막국수먹고 기분이 풀린 탓인지, 상인분들이 아침보다 많이 나와계신 덕분이었는지 사진찍을 여유와 호기심은 생겼다. 빨리 데려가서 국 끓여먹으라는 듯이 누워있던 미역들. 






옹기종기 채소들과 알록달록 꽃화분들.


여기까지가 당일치기 첫 춘천여행의 초반부. 실망감과 불안함, 다리아픔의 역경을 막국수 하나로 이겨낸 시간들. 다행히도 후반부부터는 '춘천, 다시 가고말리라' 싶은 마음이 들만큼 좋았다. 

 

생각보다 길어지는 관계로 다음 포스팅으로 넘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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