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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백설공주살인사건 The Snow White Murder Case

제목에서부터 풍겨져나오는, 한 때 유행했던 성인동화같은 스토리. 무덤덤하게 봤지만 곱씹어볼 수록 꽤나 현실적이고 오싹하다. 자기 멋대로 날조해버리는 사람의 기억, 가벼운 미디어, 끝없이 퍼져나가는 SNS의 글들. 모든 게 합쳐져서 한 사람의 인생쯤은 가볍게 매장시켜버릴 수 있는 현대를 살고 있는 게 새삼 실감도 나고. 사회비판으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면에서는 가끔 방송되는 스페셜일드 몇 편이 생각나기도 하네. 





깊은 산 속, 몇 번이고 칼로 도난질된 사채가 불에 탄 채 발견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 영화는 줄곧 이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는 과정을 쫓게 되는데, 그 전개방식이 남다르다. 사건과는 전혀 상관없는, 트위터에 라면집평가만 시시콜콜 남겨대는 방송국 계약직사원이 범인을 찾아 나서게 된다. 








딱히 친하지도 않은, 지금은 사는 지역도 다른 여자(버섯머리)에게서 흥미로운 살인사건의 이야기를 들은 남자는 트위터에 올릴 글거리가 생겼음에 기뻐하며 이야기를 쫓는다. 카메라를 들고 취재에 직접 나선다. 당연히 트위터로 생중계를 해가면서. 




친절하게도 직접 전화를 걸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정보를 알려준 여자. 살해된 백설공주, 미키 노리코와 범인으로 추정되는 시로노 미키의 이야기를 흘려준 버섯머리를 시작으로 한 명 한 명 관계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당일에도 함께 있었던, 죽은 여자와 죽인 여자의 관계를 쭉 지켜봐 온 직장동료들부터 





죽인여자로 지목된 시로노 미키의 학창시절 지인들까지. 


도입부분에 워낙 임팩트가 없어서 지루해져갈 때쯤 인터뷰가 시작되는데, 두번째? 세번째? 인터뷰쯤되면 슬슬 재밌어진다. 분명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같은 정황을 말하고 있음에도, 그걸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당시의 분위기와 등장인물들의 인상이 전혀 다르다는 걸 직접 보여주니까. '호오~ 이거구나' 하면서 흥미로워지기 시작한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대사를 다른 표정과 다른 뉘앙스로 연기하는 배우들의 모습이 가장 신선하다. 여러모로 찝찝한 면이 많은 영화인데, 그 부분만큼은 내용과 상관없이 뭔가.. 꽁트? 그런 거 보는 기분이라서 좋았다. 배우들도 촬영하면서 재밌지 않았을까? 그 장면들을 편집했을 감독도 그렇고. 여러모로 이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장치. 





'꽃보다남자'야 워낙 왕자님만들기 전용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서 딱히 여주인공한테 관심이 없었고, 이후 한참 지나 '8일째매미'를 보면서 이노우에 마오를 좀 새롭게 봤었는데 이 영화에서도 인상이 좋다. 성에 사는 공주님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외모는 수수하고 서툰 성격을 가진 여자. 겉보기에는 어둡고 무뚝뚝해보이지만 알고보면 다정한 여자. 


내가 여배우라면, 이 캐릭터 엄청 탐났을 것같다. '백설공주살인사건'에서는 인터뷰를 재현하는 부분이 나올 때마다, 똑같은 장면을 다르게 연기하는 이노우에 마오를 볼 수 있다. 엔딩무렵에서는 제대로 좌절하고 아파하는 열연도 펼친다. 찬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진짜 열심히 했구나'싶어서 왠지 칭찬해주고 싶은.







얄팍한 정보를 가지고 온갖 자극적인 멘트를 덧붙여가며 전국으로 가볍게 날려버리는 방송매체.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한 사람들의 '겉모습'에 대한 고정관념. 남주인공의 직업을 방송관계자로, 그것도 중역이나 PD나 작가가 아니라 일개 계약사원으로 설정한 이유겠지. 볼만했다. 


그리고 번뜩 생각난 우리나라의 프로그램이 있다. 어느 유명PD가 지금 종편에서 방송하고 있는.. 식당을 비롯한 여러 업체를 파헤치는 내용의 그 방송. 몇 년전에도 그 PD의 공중파 프로그램에서 잘못된 내용을 전달하는 바람에 유명 여배우의 사업체가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었는데, 최근에도 그 종편방송때문에 멀쩡한 훈제계란 사업체 하나가 누명을 썼더라고. 요즘은 공중파도 크게 믿지는 않지만, 특히나 종편은 제발 좀 쫓아내면 좋겠다.





똑같은 제품을 이름과 포장만 바꿨을 뿐인데, 전혀 팔리지 않던 비누가 날개돋힌 듯 팔려나가기 시작한다. 영화의 주제를 함축해서 보여주는 부분.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 걸 또 한 번 실감하고, 겉모습과 이미지가 인간관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지 생각해보게 되고. 여러모로 씁쓸한 영화. 마구 몰입이 될만큼 재밌거나 눈물펑펑 쏟을만큼 감동적이거나 하지는 않은데, 이런 메세지를 담은 영화가 만들어질 타이밍은 맞는 것 같다. 


소셜미디어든 방송매체든 지금은 너무 가벼우니까. 어쩌면 나도 주변의 누군가를 대할 때 차림새만 보고, 내가 가진 인상으로 판단하며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 오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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