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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그럴지도 모를 여배우들, かもしれない女優たち

인생은 선택이다. 매 순간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고, 그 선택의 결과에 따라 살아가게 된다. 이런 '선택'에 대해서 가장 골똘히 생각하는 건 어쩌면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일을 업으로 삼은 작가들이 아닐까. 따지고보면 모든 이야기들, 즉 영화, 소설, 드라마, 하다못해 몇 십초짜리 광고조차도 '선택'을 그려내거나, 권유하고 강요하고 때로는 경고하지 않는가.


매 분기마다 일본에서는 단편 드라마를 SP라는 타이틀을 붙여 방영한다. 점점 단편 드라마를 보기 힘들어지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이런 분기별 스페셜드라마라던가 장편드라마의 스핀오프 형식으로 단편드라마의 방영이 일본에는 활성화 되어있다. 유명작가들의 소설도 단편으로, 또는 장편으로 자주 만들어내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몹시 부러운 부분.


2015년 2분기가 끝나고 방영된 일본 SP단편 중 단연 이목을 사로잡는 드라마가 한 편있길래 챙겨 봤는데, 바로 그 '선택'을 소재로 유쾌하게 풀어냈더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SP일드'에 적합한 소재, 적합한 전개와 결말을 보여주는 '그럴지도 모를 여배우들 かもしれない女優たち'



일본의 유명 여배우 3명을 주인공으로 그녀들이 '배우가 되었던 결정적 계기가 없었다면 어땠을까'하는 발상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아예 이 3명의 여배우가 모두 다른 직업으로 살고 있었다면 어땠을지를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고. 실제 그녀들이 배우가 되었던 직접적인 계기, 오디션에 합격하지 못했더라면, 스카우터에게 연락하지 않았더라면, 그 후에는 어떻게 되었을지를 시작으로 잡는다. 


처음에 아주 살짝 지루했는데, 카메라워킹? 화면이 인물을 따라가는 방법이 독특해서 호기심이 생겼다. 누군가의 뮤직비디오에서 봤을법한데.. 말로 도저히 설명할 능력이 안되니 혹여나 궁금한 이가 있다면 직접 보시길. 이야기의 첫 주인공인 마키 요코가 편의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나오는 순간까지의 그 신통방통한 화면의 움직임. 


타케우치 유코는 길거리 캐스팅으로 명함을 받고 스카우터에게 연락을 해서 배우가 되었는데, 그 때 만약 망설임끝에 연락을 하지 않았다면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라는 설정이다. 워낙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이런저런 캐릭터들을 연기해서인지 베테랑 출판사 직원의 모습도 자연스럽고 잘 어울리더라. 오랫동안 만나고 있는 애인이 있지만 좀처럼 결혼이야기는 꺼내지 않고, 직장에서는 동기들에 비해 뒤쳐져 있는 모습의 출판사 직원.


마키 요코와 미즈카와 아사미는 오디션에 떨어져 계속 단역으로 여배우를 하고 있을 것이라는 설정. 그렇게 서로 단역으로 연기를 하다가 촬영현장에서 만나 친해진다. 마키 요코는 아르바이트와 단역생활을 병행하는데, 또 하나의 꿈이었던 만화를 화풀이용으로 매일 일기처럼 쓴다. 미즈카와 아사미는 점점 단역생활에 지쳐서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오디션이라는 오디션은 몽땅 보고 다니게 되며 배우를 그만두게 된다면,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애인이 있다. 




이 세 여자들이 각자의 일과 연애로 조금씩 얽히게 되고, 마지막에는 한 장소에 모이게 되는데, 처음에는 정말 마지막에 그렇게 빵 터트릴 줄 몰랐다. 그냥 식상하지만 궁금해지는 이'선택'에 대한 발상을, 유명한 여배우들이 셋이나 나와서 연기한다니 봤거늘. 기대도 안한 박장대소. '도대체 이게 왜 이렇게 웃긴거지?'싶은 황당함을 맛보게 해주더라는. 어딘가 시간에 쫓겨 억지로 해피엔딩을 만든건가 싶을만큼 황당한데, 그 기분이 결코 나쁘지 않고 유쾌하다. 흥미를 가졌던 '여배우가 아닌 다른 일을 했더라면'을 보여주는 초중반부는 다 제쳐두고 세 여자가 만나는 순간부터 마지막 엔딩까지의 영상만 편집해서 두고두고 보고 싶을만큼. 아, 이야기가 끝나고 진짜 마지막에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잘나가는 여배우 세 명이 방송국에서 나가는 장면을 보여주던데 그건 왜 넣었는지 모를만큼 어색했다. 다들 현실로 돌아왔으니 이걸 보고 있는 당신도 현실로 돌아가라, 뭐 그런 거같아서 싫었을지도.


근데 역시나, 다들 괜히 잘나가는 여배우라고 하는 게 아니더라. 타케우치 유코, 마키 요코, 미즈카와 아사미. 세 여배우 모두 정말 리얼하게 그 연령대의 여자를 연기한다. 뭐.. 배우니까 당연한거겠지만 새삼 감탄했다. 이 세 사람이 연결되기 전까지는, 가상의 그곳에도 여배우 타케우치 유코, 마키 요코, 미즈카와 아사미가 존재한다는 장치도 코믹한 포인트. 마키 요코가 텔레비젼 속의 미즈카와 아사미를 보며 요즘 자주 나온다고 말하기도 하고, 미즈카와 아사미는 커피숍에서 타케우치 유코의 싸인을 보기도 하고. 전반적인 분위기가 처음에는 리얼다큐였다가 조금씩 웃기기 시작하더니 절정에 본격 코미디로 바뀌고는 다시 리얼다큐로 바뀌는데, 그 장르의 흐름을 배우들의 표정연기로 아주 자연스럽게 이끌어낸다. 예쁘고 멋있는, 쟁쟁한 여배우들이 화내고 따지는 장면이 왜 그렇게 웃긴건지. 지금도 떠올리면 크크큭거리게 된다는.


그나저나 우리나라 방송국들도 어떻게든 단편 드라마를 살려주면 안되는건가? 장편 드라마 한 편 끝나면 무조건 단편 한 편씩 방영한다던가 뭐 그런식으로라도 어떻게 안되려나. 해마다 감독도 뽑고 작가도 뽑던데, 한 해에 편성되는 드라마 수는 한정되어 있을테고. 다들 어쩌고 있을꼬. 케이블채널의 드라마가 지금처럼 재밌고 다채로워진건 어쩌면 공중파에서 한정된 작가와 감독과 스텝들에게만 기회를 주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케이블이든 공중파든 단편을 꾸준히 방영할 수 있는 기획을 잘 잡으면 좋을텐데. 정작 아무 힘도 없는 시청자 주제에, 나도 입만 살았구나.


아무튼, 유쾌하게 기분전환할 수 있는 짤막한 일드를 찾는다면 '그럴지도 모를 여배우들', 'かもしれない女優たち' 이 드라마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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