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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IOR

테디베어가 있는 집, 스윗리틀라이즈

나카타니 미키의 영화 '스윗 리틀 라이즈'를 보고... 이제 이사한 지 세 달된 주제에 또 이사하고 싶어졌다. 아아.. 미치겠다정말.


 영화는 평범하지만 이상한 부부의, 이상하지만 지극히 평범한 부부의 이야기.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그 부부의 권태기와, 바람과, 결론에 대한 내용이다. 정열과 진실이 있다면 살아갈 수 있다는, 부부라면 한 번쯤 겪을법한 시기에 대해 읊조리는 이야기.


 


워낙 좋아하는 배우가 그녀만의 스타일로 연기하는 모습도 좋았고 군더더기없이 깔끔하게 진행되는 영화의 전개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영화의 전체적인 배경으로 등장하는 그 부부의 집이 참, 마음에 들었다.





테디베어를 만드는 아내의 직업덕에 이 집의 곳곳엔 귀여운 곰돌이들이 살고있다. 이 곰인형만으로 그녀의 성격을 말해주는 건 물론이요 두 사람의 관계가 변화하는 과정까지도 담아냈던 미술감독의 능력.





침실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여러 마리의 테디베어들. 처음엔 '아, 예뻐!'를 외쳤지만 이내 '저 인형들에 쌓이는 먼지는 어이할꼬'하며 걱정해버리는 나. 어느새 이렇게 아줌마스런 여자가 되버린걸까. 분명 나도.. 오래토록 물고빨고했던, 어린 날에 커~다란 아빠가 사줬던 커~다란 곰인형을 버리기 싫어 울며불며 엄마와 싸웠던, 그런 순수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말이지. 그 때 엄마가 했던 말을 내가 그대로 하게되다니... 





이 집이 예뻐보였던건, 아마도 집의 한 면이 모두 베란다인 덕에 아침이면 환~한 햇살이 밝게 비친다는 점이 가장 컸던 것같다. 주방이자 거실인 부분과 작업공간, 침실까지 한 면의 벽이 모두 베란다. 그 전면창을 통해 비치는 푸른빛의 아침햇살. 참, 예뻤다.





이 집에서도, 이름모를 강아지를 키우시던 할머님댁에서도, 저렇게 커피를 끓인다. 일본영화나 유럽쪽 영화를 보다보면 가끔 등장하는.. 사이펀?





종종 골목을 걷다보면 이사가는 사람들이 버리고 가는 물건들 속에, 주워오고 싶은 보물들이 쌓여있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내 나이보다 족히 오래살았을 자개농, 때로는 정성스레 문양을 새겨넣은 특이한 거울, 그리고 바로 괘종시계. 이 영화에도 그 괘종시계가 등장하는데, 아침이면 스르르 일어나 저 시계의 태엽을 감는 일로 아내는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여담이지만, 버려진 온갖 가구며 소품들을 보고 주워오고 싶어질 때마다.. 경기도 외곽 어딘가에 공터에 세를 들어 그 아이들을 죄다 가져와 닦고 고쳐서 누군가에게 주거나 내가 소장하거나.. 하고싶다는 꿈을 꾸곤한다. 영화 '구구는 고양이다'에서 우에노쥬리가 알바하던 그 곳처럼. 꽤 진지하게 꾸는 꿈이지만..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네.





이 영화에서 단연 돋보이는 공간, 주방이자 식당이자 응접실로 사용되는 공간.

 

이 집 자체가 아마도 아주 오래된 아파트인 듯한데, 그 오래된 공간의 낡은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면서도 구석구석의 활용도높을 법한 수납공간을 넣은게 부러웠다. 렌지와 조리대가 있는 공간도 아주 좁아보이는데 들어갈 모든 조리도구는 다 들어가 있다는.  





테디베어를 만드는 그녀의 작업공간. 괘종시계와 부부를 상징하는 두 마리의 테디베어가 있는 곳을 경계로 나뉘어져있다. 데스크의 앞 면, 옆 면, 윗 면까지 죄다 붙박이로 집어넣은 수납공간. 아, 탐난다. 





서로 간의 거리를 참 잘 유지하며 살아온 부부. 그런 부부답게 서로의 독립된 공간이 있다. 아내에겐 작업공간과 베란다가 있고, 남편에겐 이 방. 커다란 모니터와 게임CD가 있는 이 방이 있어서 이 곳에 있을 때면 문 걸어잠그고 혼자서 게임만 한다. 문 하나 사이에 두고 있을 뿐이지만, 철저히 독립된.

 

결혼은 꿈도 꾸지않은 나이지만, 왠지 이 부분에서 납득이 되더라는. 몇 십년동안 꾸준히 함께 살아가려면.. 서로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둘 필요가 있지않을까?





흔히들 예쁜 사람은 뭘 입어도 예쁘다고 하듯이, 인테리어도 마찬가지인가보다. 예쁜 사람은 어디에 있어도 예쁘다. 그리고 그 장소까지 빛나게 만든다. 왜 신은 나에게 저런 매력적인 마스크를 주지 않았단말인가. 전생에 뭔 죄라도 지었단말인가.

 

특히 이른 아침, 새하얀 옷을 입은 새하얀 얼굴로 창을 닦는 모습에선 또 한 번 반했다. 아침마다 저런 그림같은 모습을 보며 눈 뜰 수 있는 남편은, 얼마나 행복하겠냐는 말이지.







여기까지 쓰고보니.. 왜 무채색천지인 이 집이, 휑해보일 수도 있는 이 집이 따뜻해보였는지 알 것같다. 멀지만 가까이 살아가고있는 부부의 모습이 이 집의 모습과 참 닮았네. 아무튼 괜찮은 영화. 아무튼 살고싶었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