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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오 나의 귀신님

조정석과 박보영이 드라마를 찍는다는 소식과 함께 한 장의 포스터를 봤다. 아니, 포스터 촬영현장이던가? 목석같은 조정석에게 박보영과 김슬기가 붙어있는 모습. 세 명의 배우 모두 좋아하는 지라 궁금하고 기대되면서도, 한 편으로 '저렇게 동글동글 귀요미들만 모아놓으면 캐미가 생길까?'싶기도 했다. 줄거리를 대충 찾아보고는 다시금 이 드라마에 우려가 생겼다. 귀신소재의 로코는 '주군의 태양'에서, 셰프랑 주방보조의 러브스토리는 '파스타'에서 벌써 양껏 써먹지 않았나. 꽤나 큰 사랑을 받았던 두 편의 드라마와 같은 소재로 얼마나 더 재밌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의심했다.


하.지.만. 모두 어리석고 바보같고 쓸데없이 오지랖만 넓은 나라는 걸 자각하고 부끄럽게 만든 '오 나의 귀신님'은 매 회 방영이 될 때마다 내 입에서 "오 나의 작가님!"과 "오 나의 배우들!"을 연이어 외치게 만들었으니. 참으로 창피하면서도 반갑다.


요즘 방영하고 있는 드라마들을 보면.. 꼭 어딘가 한 부분이 아쉬울 때가 많다. 배우들이 연기를 썩 잘하고 케미까지 좋은데 작가가 그걸 날려 먹는다거나, 설정도 좋고 이야기의 흐름이며 CG까지도 훌륭한데 주연을 제외한 배우들의 연기가 불편하다거나, 뭐 그런. 분명 기대작이었는데 꼭 하나씩이 부족한.



그런데 기대하기는 커녕 회의적으로 보기 시작한 '오 나의 귀신님'은 회차가 진행될수록 점점 더 재밌어지고, 점점 더 흥미진진해지고, 점점 더 궁금해진다. 결말을 생각하면 살짝 슬퍼질만큼 몰입도가 깊어지는 신기한 드라마. 


처음에도 말했듯이 이미 비슷한, 아니 거의 똑같은 설정을 이전에 다른 드라마에서 활용했고, 크게 성공했다. 공교롭게도 두 편 모두 공효진의 대표작들인데 당시에는 독특하고 신선한 소재로 다가왔지만 한 번 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걸 다시 보여주려면 어지간히 탄탄하게, 그리고 재밌게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는 부담이 생긴다. 게다가 공효진의 러블리함이 폭발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들이 아닌가.


그럼에도 작가님은 셰프 남자주인공과 주방보조 여자주인공이라는 '파스타'의 기본설정은 물론이고 귀신이 보이고 들리며 그걸 두려워하는 여주인공과 여주인공의 구세주와도 같은 존재로 남주인공의 관계를 설정한다. '파스타'와 동일한 두 사람의 직업과 만나게 되는 배경장소까지는 그렇다쳐도, 귀신과 관련된 인물설정은 '주군의 태양'과 정말이지 똑닮았다. 




그런데 왜일까? 왜, 위 두 편보다 '오 나의 귀신님'이 더 몰입되고 더 재밌게 느껴지는걸까 생각해봤다. 결과, 여주인공을 비롯한 인물들에 대한 설정이 훨씬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라는 걸 알았다. 




'파스타'에서 두 주인공이 주방에서 만나 알콩달콩 깨볶으며 연애하기 위해 셰프와 주방보조라는 도구가 사용되었으나 왜 그 두 사람이 요리를 하는건지, 어떤 요리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었다. 여주인공의 아빠가 중국집 요리사라는 것 정도? 덕분에 달달한 설탕냄새가 마구 풍기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배경으로 한 연애물이 탄생했지만 러브러브 말고는 딱히 기억에 없다. 예쁜 영상미, 달달한 러브라인, 사랑스러운 공효진. 그게 전부.





반면 '오 나의 귀신님'은 어떤가. 요즘 숱하게 방송에 나오고 있는 셰프들처럼 연예인 뺨치게 유명한, 자신의 레스토랑을 소유한 셰프는 어릴 적 밥을 먹을 수 없었던 상처가 있고, 그걸 면으로 승화시켰다. 과거의 상처를 현실의 커리어로 만들어낸 멋진 부연설명은 주인공에 대한 현실감을 주고 시청자가 더 애정있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게 한다. 여주인공이 주방보조를 하는 이유도 비슷하게 설명이 된다. 고시원에서 조심스레 만들어 블로그에 포스팅하던 양배추죽의 등장은 여주인공이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가슴뭉클한 사연과 함께 러브라인의 도구로도 사용된다. 이 얼마나 세심하고 똑똑한 설정과 전개란 말인가. 가슴찡한 포인트를 딱딱 짚어서 끄집어 낸 작가의 능력이라고 봄. 


그렇다, 요즘의 나는 양희승 작가님을 칭송하느라 바쁘다.




'주군의 태양'도 마찬가지. 사고를 당한 이후 귀신을 보게 된 여주인공은 덕분에 사회생활도 못하게 되고, 언제 귀신을 만나게 될 지 몰라 항상 두려워 한다. 그런데 몸을 만지면 귀신이 사라지는 주군의 등장으로 두 사람은 어찌저찌하다 귀신들 한을 풀어주고, 주군이 배신당했다고 생각한 귀신의 정체가 밝혀지고, 여주인공 여행갔다 와서 귀신 안보이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폴링인럽. 





'오 나의 귀신님'은 요상한 분장으로 섬뜩하게 만드는, 한풀어달라고 주인공에게 들러붙는 숱한 귀신의 등장 대신에 딱 한 명의 귀신에게 집중한다. 김슬기가 연기하는 기사식당의 딸래미. 철부지 동생과 푸근하고 마음여린 아버지의 생계를 책임지던, 그러다 처녀귀신이 되버린 또 한 명의 여주인공. 에피소드 형식으로 주인공들의 러브라인을 완성하기 위해 잠깐씩 사용되는 존재가 아니라, 온전히 자신의 이야기와 상처와 장애를 가지고 있고 그걸 직접 풀어나가는, 행동하는 주인공. 






그리고 그 사람의 몸을 만지면 귀신이 사라져버리는 기현상보다는 양기남이 더 현실감있게 와닿는달까? 어디선가 들어봄직한 그 말이 코믹야릇하면서도 자연스럽고 익숙하다. 한서린 처녀귀신이 악귀가 되지 않고 승천할 수 있는 열쇠이자 현실의 여주인공이 짝사랑하고 동경하는 인물. 여러모로 인물에 대한 설명과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개연성에 대한 장치들이 아주 치밀하다. 시청자들이 주인공을 불쌍하게 느끼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 수 밖에 없는 모든 이유를 하나하나 정말 자세하게 대사와 상황으로 만들어 풀어낸다. 친절하다고 할 만큼 꼼꼼히. 


하.. 정말 제대로 잘 풀어서 글로 설명을 하고 싶은데, 문장력의 부족을 한탄할 수밖에 없는 심정이 매우 답답하구려. 그만큼 요즘은 매일 금요일과 토요일을 학수고대하며 지내고 있다. 


뭔가 '파스타'랑 '주군의 태양'을 까내린듯한 인상이라 찜찜한데, 두 드라마 모두 한 회도 빠짐없이 본방사수했던 애청자임. 다만, 그 두 드라마와 '오 나의 귀신님'은 코드부터가 다르다는 걸 설명하고 싶었을 뿐. '연애'를 메인으로 보여주는 드라마와 '캐릭터'를 메인으로 보여주는 드라마의 차이일 뿐. 간절히 바라옵건데 양희승 작가님, 기획서랑 대본을 풀어주소서. 가능하면 책으로 출판해주소서. 보고있나 TVN? 보고있나 CJ? CJ계열 출판사가 있던가.. 욕심을 더 부리자면 DVD랑 대본이랑 같이 패키지로.. NG장면 필첨에 작가, 감독, 배우 사인까지 넣으면 더 좋고..




배우들도 아주 그냥 말하기 시작하면 입이 아플만큼 찰떡진 연기와 케미를 보여준다. 조정석, 박보영, 김슬기 세 사람 모두 연기 잘하는 배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일줄은 몰랐다. 특히 박보영이 울 때마다, 슬퍼할 때마다 같이 울면서도 감탄한다. '과속 스캔들'에서 바락바락 할 때의 그 놀라움을 오랜만에 다시 느끼는 중.





덕분에 동글동글한 인상의 세 사람이 과연 잘 어울리고 보는 재미가 있을까 했던 나의 걱정은 까칠하고 오만방자하면서도 감질나게 귀여운 캐릭터를 흡수해버린 조정석, 뻔뻔하게 들이대다가 사슴같은 눈망울에서 시뻘건 눈물을 뚜욱뚝 흘려대는 박보영, 사랑스럽게 까불거리면서도 아버지와 동생을 보는 표정연기만으로 내 가슴에 스크래치를 내는 김슬기를 보면서 말끔히 지워졌다. 주연들 뿐인가, 주방의 훤칠한 남정네들과 철딱서니 엄마역할의 신은경, 김슬기 목에 방울 달아준 도사님? 보살님?도 그렇고 다리 아픈 여동생도, 하물며 가수출신이라는 인식이 확 박힌 박정아까지도 꿀떡진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어제 방영분으로 악역 확정되신 경찰아저씨, 임주환까지. 기사식당에서 보여준 그 서늘한 표정. 캐릭터 변화에 기대감이 용솟음 친다오.


지금 시대에, 이제와서 이런 말을 하는 게 나도 우습지만, 공중파는 뭐하나 이런 드라마 안 찍고? 더불어 TVN 사랑합니다♥ 그러니까 DVD랑 대본이랑 이것저것 묶어서 패키지 좀? 응?





  

이런 장면보고 짤을 안 만들수가 없잖아요.. 키스씬은 심장이 벌렁거려서 두 번은 못보겠더라는. 워후.. 박보영 웃는 거 보고 정말.. 좋더라아~ 뒤늦게 정신차리고 소스라치는 조정석도 귀여워서 미칠 지경이었음. 빨리 경찰아저씨한테 뿌려놓은 떡밥을 써먹어주세요! 처녀귀신이랑 양기남의 행복한 결말(?!!)은 최대한 늦춰주세요!